'뭐? 인터넷에 살생부가…?'
'뭐? 인터넷에 살생부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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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 당선자의 홈페이지인 노하우(www.knowhow.or.kr)를 중심으로 민주당의원 살생부가 나돌자 '살생부'에 '역적'으로 지목된 일부 의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살생부는 현대판 인민재판"이라고 비난했다.
이 살생부는 특1등공신(19명),1등공신(10명),2등공신(16명),3등공신(17명),역적(21명),역적중의 역적(3명),판단유보 및 기타(8명)으로 분류돼있다.>



"인터넷에 민주당 의원 살생부가 나돈다고?”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이른바 ‘민주당 의원 살생부’란 이름의 인터넷 문서가 보수정치인들과 일부 제도권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사실 대통령 선거 직후부터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에는 대선국면에서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였던 일부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글들이 올라왔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살생부니 척결대상이니 하는 이름의 인터넷 문서로 정리돼 왔다.

여기에는 민주당 의원들의 이름도 있고, 한나라당으로 당을 옮긴 정치인들의 이름도 들어있다.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름도 많이 거론되고 있다. 제도권 언론들은 지금에서야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네티즌들에게 이런 척결대상 명단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전형적인 인터넷의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일 뿐이며, 실제로 이제는 일종의 공론으로 의견집약이 돼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인터넷 공론화의 전형

이러한 네티즌들의 정리 작업이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년 총선에서 기회주의적인 낡은 패러다임의 정치인들을 심판하자는데 있으며, 철새적 행태를 보여왔던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무시해 왔던 이유로 작용했던 망각증을 극복하자는 의지도 포함돼 있다.

인터넷 문서로 일단 작성이 되면, 일종의 정화과정을 통해 명단 추가도 쉽고 삭제도 쉬울뿐더러 복제나 재생산이 용이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민들의 망각증에 기생해 왔던 철새정치인들이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총선이야말로 네티즌의 이같은 심판 의식이 국회의원의 당락을 좌우할 중요한 요소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문건은 노무현 당선자가 무슨 보복정치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정치권의 누군가가 만든 것도 아니다. 최소한 내년 총선전까지는 원내 소수정당을 안고가야만 하고, 정계개편도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형편에 뺄셈정치만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복이니 정치적 목적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한마디로 인터넷의 의사소통방식과 공론화 과정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편견에 불과하다. 아니, 어쩌면 무지가 아니라 의도적인 오해일 수도 있다. 어떻게든 척결대상 정치인들의 불안심리를 증폭시켜 뭔가 정치권 자체의 보수반동적인 지각변동을 염두에 둔 심모원려일 수도 있겠다.

인터넷에 익숙한 네티즌이라면 설명을 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으나 굳이 작성과정의 진실을 유추한다면 이런 방식이었을게다. 노무현 당선자가 대선과정에서 민주당의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다. 일부 핵심 지지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였으며, 일부 의원들은 당을 옮기기도 했고, 특히나 노무현 후보(당시)의 흔들기에 주력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행태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네티즌들의 분노를 샀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에서는 이런 의원들의 행태를 기억해뒀다가 다음 총선에서 심판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봇물을 이뤘다. 인터넷의 특징은 정보의 합체와 복제, 이를 통한 확대재생산이 너무나 용이하다는 점에 있다. 열성적인 일부 네티즌들은 명단과 이들의 행태(이들에게는 이른바 ‘죄상’)를 적시한 종합판 인터넷 문서를 생산해 냈다.

이것은 또한 익명의 네티즌들에 의해 첨삭과정을 거쳤다. 누구는 이러이러 하기 때문에 척결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누구는 또한 그렇기 때문에 명단에 들어가야 한다는 식의 반론들이 중첩되면서 오류의 정정작업도 병행됐다. 전형적인 인터넷의 여론정화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종합판 명단, 즉 살생부의 모습을 띠게 됐다고 필자는 추론한다.

이 명단은 무엇을 근거로 작성됐을까. 실은 인터넷에 떠 있는 제도권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이 주요한 자료였다. 또한 보다 직설적인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매체에 보도된 사실들도 많은 참고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정확도를 더한 것은 아마도 익명의 네티즌들 공이 컸을 것이다. 익명의 네티즌들은 누구인가. 주로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든지 비서관, 정당 관계자들이 그들이다.

국회의원들은 그들을 손발 부리듯 무시할지 모르지만, 그들도 판단력 있는 자연인들이다. 비록 모시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정면으로 대들지는 못하지만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는 할말 못할 이유가 없다. 일종의 내부고발자 역할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해 잘못된 정보에는 즉각적인 반론이 제기됐고, 그러한 반론이 네티즌들에게 정당하다고 인정되면 즉시 정정되기도 했다. 인터넷을 익명의 무고성 글들이 난무하는 곳이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결코 이해될 수 없겠지만, 이러한 쌍방향의 오류 정정과정은 적어도 정치문제에 관한 한 인터넷을 자체적으로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해 왔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대로 이러한 살생부의 내용이 “90% 이상 맞는 내용”이고, “두세 의원들에 대해서 자의적인 평가가 있지만, 대체로 친노 입장에서 내용을 잘 알고 예리하게 분류가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접근과 보도를 독점적 권리로 생각하는 제도권 언론들은 앞서 얘기했던 과정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

"잘못된 행태 심판"네티즌 의지 집약>


그렇다면 이러한 살생부가 갖는 정치적 함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인들의 잘못된 행태들을 선거로 심판하겠다는 네티즌들의 의지 집약이란 측면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이러한 명단이 인터넷 문서로 작성되게 된 배경은 바로 그것이다. 네티즌이라고 얘기하지만, 우리 국민의 70% 이상이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통계를 봐도 이제 네티즌은 곧 유권자의 대다수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철새정치인들의 과거 행태를 망각하고, 지역감정이나 기타 이해관계에 얽혀 이들을 재신임해 왔던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있다. 절대로 이들의 행태를 잊지않고 다음 총선에서 표(票)로 심판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유권자의 자각이며, 이는 곧 정치토양 자체가 이미 변했다는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필자는 네티즌으로 대변되는 이들 유권자의 힘이 결국 민주당의 차기 총선 국회의원 공천과정 자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예견한다. 기존의 상향식 공천제는 국회의원이 장악하고 있는 선거구 대의원들만의 잔치였다. 이런 식이어서는 안된다는 의식도 이미 네티즌들에게는 상식일 뿐이다. 국회의원 공천은 철저한 국민경선제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 대다수가 원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공론화시킬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결국은 국회의원 공천방식이란 측면에서는 민주당의 방식을 좇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예견된다. 구태의연한 나눠먹기식 공천으로 생산된 후보들의 경쟁력이 국민경선에 의해 선발된 민주당 후보들의 경쟁력에 미치지 못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살생부란 다소 살벌한 이름의 문서가 의미하는 진실은 다음 총선이야말로 낡은 패러다임의 정치가 청산되는 개혁의 무대가 될 것이란 행복한 예감인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노무현 당선자의 출현이 그러한 정치개혁의 첫단추였다면, 살아있는 유권자들의 의식과 인터넷을 통한 참여민주주의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음 총선이야말로 정치개혁의 중간결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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