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소리로 세상에 외쳐요
우리 목소리로 세상에 외쳐요
  • 이광재 기자
  • 승인 2001.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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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인 1일 오전 11시, 광주시민회관 앞마당에서 정치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300여명의 시민이 모인 이날 집회 이름은 '국가보안법 폐지 및 개혁입법 쟁취를 위한 광주전남 시국대회'.

김대중 정부 이전만해도 '시국대회'엔 으례 취재, 사진기자들이 모여들었지만 이젠 관심이 떨어진 탓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행사장을 조금 자세히 드려다 보면 조그마한 카메라를 들고 집회 여기저기를 열심히 찍고 있는 이들이 눈에 스친다.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비디오 저널리스트 꿈꾸는
민언련 VJ분과 '민씨네 영상' 여섯명의 게릴라들

카메라를 맨 채 쪼그려 앉아 있는 김현석씨(35). "평소 자세 그대로 편안하게 계셔요" 렌즈를 들이대자 자세가 굳어지는 참가자에게 김씨는 연신 '자연스러움'을 요구한다. 연사 뒤편에서 군중을 바라보며 카메라를 바삐 움직이는 송승하(25)씨.

"VJ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6mm 디지털 카메라예요. 방송용 카메라에 근접한 화질에다 한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크기라 '기동성' 또한 좋죠."
카메라 자랑이 한창이다.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는 조선대 신방과에서 빌린 것이다. 오늘은 비디오 저널리스트(VJ:Video Journalist)를 꿈꾸는 이른바 도시속 게릴라들이 '작업'하는 날이다

이들의 아지트는 광주전남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약칭 민언련) VJ분과.
도시를 헤집고 카메라를 쏘는 이들은 류진석(35. VJ분과장), 김현석(36. 21마젤란 대표), 임용철(31. 민언련 간사), 송승하(25. 동신대4년), 최성욱(26. 전남대4년), 백선미(25. KBS 구성작가)  등 모두 6명.

집회가 끝나고 시내 행진을 하는 동안에도 이들 VJ게릴라들의 카메라는 계속 돈다. 저녁 7시가 되어서야 광주시 동구 남동 소재 아지트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날 촬영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다.

"알다시피 VJ는 소형 카메라를 이용, 기획에서 촬영, 편집까지 영상제작 전과정을 혼자서 수행하는 사람을 말하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손이 많이 가지요. 그래서 집단 공동작업이 필요한 겁니다" 카메라 게릴라의 최고령자(?) 김현석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전남 장흥에서 개인적으로 영상제작을 하다가 작년부터 아예 광주로 올라와 지금은 조선이공대 산학협력관에서 '21마젤란'이라는 인터넷방송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열정파'로 통하는 최성욱씨는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우리에겐 우선 많은 촬영연습이 필요해요. 이번 촬영도 그 중의 하나구요. 좋은 소재를 잡은 것도 중요하지만 평범한 소재에서 우리 색깔에 맞는 주제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씨는 특히 지난해 12월, 6일간 일본 동경에 건너가 민간법정이 개최한 일본군위안부 전범재판 현장을 영상으로 담아왔다. 기존 방송국이라면 PD, 카메라, 음향, 조명 등 최소한 4명이 필요한 일을 혼자서 해보겠다고 뛰어 들었고, 그 결과 15시간 분량의 비디오테이프를 찍어왔다.

교육도 장비도 공간도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카메라를 잡는 것보다 고민하고 토론할 일 더 많지만,

민언련 VJ분과(http://www.kjdj.or.kr/vj.html)는 지난해 6월 결성됐다. 민언련이 주최한 비디오저널리스트 강좌에서 만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모임으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결성 후 반년동안 제자리를 맴돌다가, 올 1월 ''인물과 사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김동호씨가 벌인 77일간의 조선일보반대 전국도보행진을 영상뉴스로 만든 것이 계기가 돼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월엔 민언련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홍보용 11분 짜리 영상물을 공동 작업으로 만들었다. "연출, 구성, 촬영, 편집, 내레이션, 음악 등 여섯 사람이 모두 역할을 나누고 나흘을 꼬박 세웠어요. 우리목소리로 세상에 외친다는 긍지가 생겼어요." 민언련 간사인 임용철씨의 자랑이다. 두 작품은 인터넷방송(http://www.channelin.com 채널 0261)에 올려놓았다.

분과의 이름도 있다. '민씨네 영상'. '민'은 민언련의 머릿글자이고 '씨네'는 영상(cine)과 가족을 뜻한다. 따라서 '민언련에서 영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가족 같은 모임'을 의미한단다.

민씨네의 이야기는 K-TV 공공부문 공모로 이어진다.
K-TV에서 공익적 내용의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을 공모한다는 것이다. 민씨네는 적극 참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템. 한바탕 논쟁이 시작되었다.

밤 9시를 넘어 나온 아이템은 다양했다. CCTV를 고정시켜 찍어볼까, 공공근로의 허와 실은 어떨까, 속도전쟁을 치르는 예식장문화, 우등고속이 늘고 일반고속이 줄고 있다는 등등.

그래도 가슴엔 꿈이 있다
소수에게 독점되온 거대한 벽, 힘찬 외침으로
그 벽에 도전한다


민씨네의 올해 계획은 뭘까.
4월엔 영상초보자를 위한 촬영과 편집에 관한 교재를 영상으로 만들 계획이다. 또 북구문화센터 등과 협력 시민을 위한 영상교육에도 나설 생각이다. 매달 만원씩 내는 회비를 모아 VJ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 갈 계획도 있다. 일단 왕복 뱃삯만 모아지면 바로 떠나기로 했다.이들의 공동작품은 아직 두 편에 불과하다. 시민단체 활동을 기록한 것과 안티조선운동을 소재로 한 6분 짜리 뉴스. 이들은 그 작은 경험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한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현재 이들은 비주류다. 교육도, 장비도, 공간도 부족한 것 투성이다. 또한 카메라를 잡는 일보다 고민하고 토론하는 일이 더 많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울 때도 많다. 스스로가 인정하는 걸음마 단계다.

그래도 가슴엔 큰 꿈이 있다.
"세상에 태어나 첫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부터 인간은 세상을 향해 외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외침이 소수에게 독점되어 있어요. 우린 우리의 목소리로 그 거대한 벽에 도전할겁니다"

류진석
개인적으로 대체의학에 관심이 많아 의학교육을 위한 교육영상이나 다큐를 만드는 게 꿈이
다. 광주의 영상문화가 살려면 영화의 경우처럼 국가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

김현석
늘 순수와 상업성을 놓고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이 된다. 다큐작품을 만든다는 게 당장 돈은 안되지만 만들다보면 욕심이 생긴다. 작품으로 평가받고 싶다.

임용철
세상에서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시선을 고정시키고 싶다. 졸업 후에도 비디오저널리스트로 활동할 계획이다.

최성욱
평소 기존의 공중파가 놓치는 부분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다. 과도하다거나 방송에 맞지 않다며 방영되지 못했던 부분을 담고 싶다. 특히 다큐는 영화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라 선호한다.

백선미
사람들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다보니 주변사람들을 많이 잊고 산다. 잊혀져 가는 것들을 되찾는 수단으로 영상기록을 생각한다

송승하
비가 오면 도로가 엉망이라 물이 튄다. 작은 일이라고 불편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놓치고 있는 권리의식을 일깨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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