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책이야기-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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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서진규 지음/푸른숲/8천7백원 늦둥이 딸이 또 다시 늦둥이 딸을 낳았다. 엄마와 나, 그리고 다섯달 된 내 딸의 얘기다. 얼마 전,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친정에 들렀다. 꼭 가야 할 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뭔가 자극이 필요하다는 내면의 외침을 감지해서였다. 칠순이 내일모레이신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고 계셨다. 30분만 책을 읽으면 어지럽다고 하시면서도 요즘 유행하는 노자, 장자부터 해리포터 시리즈에 이르 기까지, 읽지 않으신 책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읽던 책들을 몽땅 빌려왔다.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는 그 속에 끼어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손에 잡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가발공장 여종업 원으로 미국에 건너와 미군소령으로 그리고 하버드 대학원생으로 성공한 자신의 이야기를 엮은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이젠 역시 하버드를 나와 미군 장교인 딸 얘기로 속편을 냈다보다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손에 잡는 순간, 난 그 강력한 흡입력에 빠져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에 읽히는데, 그 사이사이에 그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딸을 키워야 했던 가슴 절절한 모 정이 배어나왔다. 이혼녀, 그것도 군인의 몸으로 아이가 막 정을 붙이려고 하면 이곳저곳 이사를 다녀야 했 고, 걸핏하면 비상이네 훈련이네 하면서 아이를 혼자 놓아두어야 했던 상황을 엄마는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툭 던져진 아이, 이제 겨우 말을 익힐 법하면 또 다른 상황에 던 져져야 했던 아이. 엄마가 비상훈련에 소집되어 일곱 살일 때 한국까지 혼자서 비행기를 타 고 와야 했던 아이, 그리고 그렇게 보내진 한국에서 연탄가스를 마시고 사경을 헤맸던 아이. 그 아이가 엄마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내면서, 엄마의 뒤를 이어 미군장교로 복무하겠다고 나섰을 때, 엄마의 가슴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누가 알 수 있었을까. 그렇게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도 그 엄마와 딸은 항상 즐거웠다. 딸이 사춘기일 때는 엄마 도 함께 사춘기였고, 엄마가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딸도 함께 공부했다. 둘은 때로는 친구였 고, 때로는 라이벌이었다. 모녀가 함께 하버드를 다니면서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는 모습, 때때로 좌절하는 모습조차 감동이었다. 엄마는 행동으로 아이에게 얘기했고, 아이는 엄마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했 다. 아름다웠다. 난 요즘 시시때때로 내 처지에 절망했다. 아이가 셋이나 되어버렸으니 이젠 날개옷을 되 찾아도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과거에 얼마나 유능한 직장인이 었던가를 강조하면서 남편이 나를 눌러 앉혔다고 자책하는 모습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지만, '절망은 또 다른 절망을 낳는다'는 것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는 늦둥이 딸 앞에서 항상 희망을 보여주고 계신다. 나는 이제 나의 늦둥이 딸 앞에 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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