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예술가는 또 하나의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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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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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담[소설가. 단편 '깃발'외 다수]

똘스또이는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진리가 혹시 종교에 있지 않을까 고심한 끝에 독실한 신자가 되었으나 부패한 짜르를 받혀주는 호국종교임을 간파했다. 칼날 같은 필치로 종교를 비판했고, 그것은 짜르의 권력을 뒤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을 일컬어 당대이 사가는 러시아는 또 하나의 정부를 갖게 되었다고 규정했다.

진정한 예술가는 시대정신의 화현이다. 진정한 예술가를 얼마만큼 배출하느냐에 따라 그 민족의 역동성이 드러난다. 노벨문학상이나 명성을 얻었다고 해서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렇고 헤밍웨이도 그렇다. 위의 두 작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예술가는 개인의 재능만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예술가는 의외로 드물다. 왜냐하면 민중의 역량과 민족의 역동성, 그리고 재능이 함께 어우러져야만 참다운 시대정신을 갖춘 예술가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나 일본의 예술가들은 별 볼일 없다. 다시 말하면 두 나라는 역동성이 부족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김지하 황석영 홍성담…시대정신구현 예술가

나는 예술가를 통해 우리 민족의 역동성을 오래 전부터 감지해왔다.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예술가를, 우리는 행복하게도 많이 갖고 있다.

유신정권을 정면으로 돌파한 시인 김지하. 독재 권력을 휘두른 박정희가 제일 두려워한 것은 김지하 선생의 펜이었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북한 방문기를 발표해서, 반세기의 레드 콤플렉스를 단숨에 무력화시킨 작가 황석영.
그는 일찍이 <무기의 그늘 >을 써서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의 본질을 관통했다. 1970년 초에 시작한 이 작품은 미국이 존재하는 한 유효하다. 보수 반동의 이념을 면면이 이어가는 조선일보에 메스를 가한 것도 황석영 선생이었다. 그가 20세기 최고의 작가가 된 것은 우리 시대정신의 승리이다.

광주 5월이 낳은 화가 홍성담은 어떤가. 5월을 보편적 항쟁으로 승화시킨 것은 그 예리한 칼날로 그려낸 판화에서였다. 그에 의해서 판화의 독특한 매체-다수 복제가 가능한-가 비로소 민중적 관점으로 전환되었다. 판화는 광주를 넘어, 국토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갔다. 그는 1988년 평양축전에 걸개그림을 보냄으로써 남북문화 교류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장기수라는 점이다. 탁월한 재능 못지 않게 현실 모순을 몸으로 감내한 예술가들이다. 이 예술가들은 또 하나의 정부라고, 나는 감히 규정한다.

역리 등장땐 분연코 침묵하지 않을 것

이제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다. 잘 하리라 믿어보지만 혹여 국민을 배반할 때 새로운 세대와 예술가들이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 4강을 이룬 역동성이 광장문화를 이루어내었고, 그것이 촛불시위와 이번 대선전에도 같은 코드로 작용했다. 우리는 인터넷과 광장문화로 직접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있다. 광장은 청와대와 미 대사관 바로 턱 앞에 있다.

역리가 등장하면 순리로 가기 위해 민중과 예술가는 분연코 시대정신을 구현할 것이다. 이 역동성을 누가 잠재울 수 있으랴.

/홍희담(소설가. 단편 '깃발'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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