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모딜리아니-하얀색 칼라를 한 잔 에뷔테른의 초상
[그림이야기]모딜리아니-하얀색 칼라를 한 잔 에뷔테른의 초상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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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딜리아니-하얀색 칼라를 한 잔 에뷔테른의 초상
늘어진 긴 목선, 좁은 어깨의 다소 멍해 보이는 표정의 여자가 당신을 쳐다봅니다. 돈 한 푼 제대로 안 벌어다 주는 남자, 말다툼 끝에 자신을 창 밖으로 집어 던지기 까지 하는 폭력 따위엔 이제 익숙할 만큼 익숙해진 터입니다. 걸핏하면 욕지거리에, 어디서 끌어 모았는지, 사방에서 여자들은 몰려듭니다. 곧 죽어도, 붉은 색 스카프는 꼭 챙기는 남자, 가끔은 자신의 모습에 취해 옷을 훌훌 던져버리던 남자를 이 여자는 왜 그렇게 끈덕지게도 사랑했던 걸까요?

"나를 보라, 마치 신의 모습 같지 않은가?"

그가 옷가지를 벗어 던지며 하던 말이랍니다. 잔과 모딜리아니(1884-1920)의 사랑에 대한 영화도 있었지요. 제라르 필립 주연의 몽파르나스의 연인들이란 제목으로 말입니다. 모딜리아니 33세에, 잔은 겨우 19살이었습니다. 극심한 반대를 무릅쓴 그들의 결혼생활은 불 행의 연속이었지요. 한 마디로 그는 개뼉다구 같은 예술지상론자였습니다. 예술지상주의라 함은 말 그대로, 예술하는 이들은 모든 것에서 면제되어 있고, 또 모든 것을 도피할 이유를 타고났으며, 모든 것을 우선할 권리를 가진다는 거죠.

따라서 그들은 공연히 시린 얼굴을 하고, 어둡고 엄습한 골목길에서 퍼마신 술을 토악질해 대곤 했습니다. 그야, 뭐, 요새는 어떤지 모르지만, 나무그림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 대학가 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부모가 준 돈을 낼름 받아 대학 등록금을 내면 서도 항상 당당하던 그들이 싸구려 선술집 앞에서 토악질해댄 것은 아마, 국가를 위해서, 민 족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단지, 그렇게 미친 척 하고 싶다라는 어긋난 자아도취 때문일 수도 있었겠죠. 아,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지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이지요. 나 무그림 역시 학교 앞 술집 간판 아래 쭈그리고 앉아 낭만을 타령하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지 요. 끊임없이 여자를 바꾸고 다니던 모딜리아니는 바뀐 여자마다 모델로 삼았습니다. 긴 섹스와, 어김없는 가학행위가 끝나면, 여자들은 대부분 그의 그 우수에 젖은 눈이 마약 때문이었다 는 것을 알고 혼비백산 줄행랑을 치곤 말았죠.

그러나 그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내 던 여인은 바로 잔,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가 단내 나는 입술로 힘껏 깨물었을 긴 그녀의 목이 이상하게도 처량해 보이는 건 왜일까 요? 한때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며 깨물어 주었던 그 긴 목덜미에서 이상하게도 나무그림은 눈물을 읽습니다.

/김영숙

나무그림 김영숙님은 사이버주부대학(www.cyberjubu.com)에 '나무그림 김영숙의 그림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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