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진 길에서 아름다움을 노래하다
후미진 길에서 아름다움을 노래하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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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아줌마] 자전거여행/김훈 저/생각의 나무, 9천원
   
▲ ⓒ자전거 여행-김훈
늦동이를 낳고 몸조리를 하던 산후조리원은 작은 공원 옆에 있었다. 방에서 창문을 통해 공원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온몸이 '근질거렸다'. 비싼 돈 내고 있으면서도 마치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급기야 어느 날 밤엔 그곳을 탈출했다. 불과 30분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항상 보기만 하던 공원에서 산책도 했고, 근처 서점에 들 러 책을 골랐다. 그때 골라든 책이 바로 김훈의 [자전거여행]이었다. 자전거라는 단어, 여 행이라는 단어, 그리고 시원스레 편집된 사진들...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김 훈은 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냈던 언론인이다. 그의 또 다른 기 행문인 [문학기행](한국문원)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한국일보의 장명수 사장은 그 책 의 서문에서 김 훈을 [글이 비상한 만큼 성질도 비상한]이라고 표현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 었다. [자전거여행>에서도 그의 비상한 글솜씨는 곳곳에 나타난다.

여수 돌산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을 보면서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 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 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산수유는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종적을 감춘단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 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단다.

목련은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 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지고... 내가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한 사람이 "그가 너무 '미문'을 추구하다 보니 글이 어 렵다"고 얘기한다. 사실이다. 서문에 그가 쓴 말,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 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 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는 알 듯 모를 듯한 표현은 마치 난 해한 산문시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는 것은 실제 그의 나이가 쉰이 넘었음에도 글 이 젊다는 점이다. 쉰 둘의 사람이, 그것도 책상에 앉아 펜을 굴리는 사람이 전국을 자전거 한 대로 다녔다는 점은 놀랍기도 하거니와 무척 매력적이다.

20세기의 마지막 가을부터 21세기 첫여름까지 그는 [풍륜(風輪)]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타고 태백산맥을 비롯해 곳곳의 산맥들과 고개들을 넘고 강을 건너면서 한반도 곳곳을 노래 했다. 내가 늘상 다니면서도 미처 보지 못했던 것, 살면서도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그 의 비상한 눈과 글을 통해서 보이고 느껴졌다.

사진작가 이강빈의 시원한 사진과 시원한 편 집도 책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의 자전거는 지난 여름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새 자전거를 장만 했는데, 그는 책머리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범경화님은 광주 출신으로 사이버주부대학(www.cyberjubu.com)에서 '책동네 이야기 마을'을 연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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