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르포-눈이 아무리 내린들 가난보다 춥겄어
달동네 르포-눈이 아무리 내린들 가난보다 춥겄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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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 20년만에 내린 폭설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광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혹독한 추위는 장농 깊숙히 넣어 두었던 내복까지 꺼내어 입어도 살을 에일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 한 켠에는 이런 추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있다. 달동네로 불리우는 북구 우산동 13통 사람들. 그들에겐 하루 하루 목숨을 잇는 것이 더 힘겹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사무소 '생활보호자' 명단에서 찾은 장용현 할머니(72) 집은 통장이 동행해줘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할머니"하며 문을 들어서자 마자 세면장에서 나오는 할머니와 부딪친다. 누추한 방이라도 들어오라며 장 할머니가 방문을 여는 순간, 바깥 바람만큼 차가운 기운이 얼굴을 스친다. "따뜻한 아랫목이 없어서 어쩐디야. 여기 보일러 선 있응께 여기 앉어" 장 할머니는 방금 찬물을 만져 빨개진 손을 바닥에 대며 미안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윗방에 10개월 된 외손녀가 자고 있거든. 그것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방만 불을 떼제". 장 할머니는 경기도에서 파출부 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딸의 자식을 맡아 키우고 있다. "이 얘기가 내 목숨을 이어주고 있어. 긍께 맡아서 키우제. 밤에 잠도 못자고 애기 뒤치닥꺼리가 웬만히 많아야제"라며 한숨을 푹 내쉰다. 하지만 딸이 해주는 것은 가끔 와서 쌀을 팔아주는 것 외엔 없다. 그래서 장 할머니에겐 손녀 우유 먹이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손가락에 뭐가 묻어야 빨아서라도 먹제"라며 한숨짓는 장 할머니는 손녀 걱정만 하다가 끼니를 거르는 일이 이제 익숙하다. 게다가 28살 된 아들도 눈이 너무 나빠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전전긍긍하며 같이 살고 있다. 장 할머니는 며칠전 막노동이라도 해 보라고 쫓아낸 아들 때문에 이마의 주름이 늘어가고 있다. 하루 하루를 잇는 것도 힘에 겨운 사람은 이 달동네에서 장 할머니 뿐만은 아니다. 장 할머니 집을 나서는 순간 리어카에서 박스를 내리다가 허리를 두드리며 '하이고~' 한숨을 내짓는 정용임 할머니(80)를 만났다. "이 박스 다 어디서 가져오셨어요?" "다 내가 주웠제. 나는 잠만 안오면 나가서 박스 주워". 정 할머니는 거리에 버려진 박스, 옷, 고물 등을 주워 팔아 생활고를 이겨나가고 있다. 정 할머니집 안에는 사람이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30벌 정도 되는 옷이 걸어져 있다. "밖에서 주운 것 그대로 갖다주면 돈도 안줘. 다 빨아야제"라며 걸려진 옷을 흐뭇한 듯 쳐다보는 정 할머니. 하지만 이번 겨울엔 날씨가 추워 옷을 말리느라 일주일씩이나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옷이나 박스 모두 kg당 65원에서 70원을 받기 때문에 하루에 많이 벌어봤자 2천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정 할머니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돈이다. 얼마전 정 할머니는 아들이 다리를 다쳐 120만원짜리 치료기를 할부로 구입했다. 이 돈을 다 갚기 위해서는 매달 동에서 나오는 생활비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할 형편이다. 그래도 정 할머니는 "며느리도 우리 아들 돈 못번다고 집 나간지 오래됐어. 불쌍한 놈이여"라며 아들 걱정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 정 할머니는 얼른 돈을 벌어야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주워가기 전에 또 얼른 나가봐야제"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정 할머니를 만나고 한참을 걸었다. 동행한 우산동 13통장 박기철 씨는 "훤한 대낮에는 사람이 거의 없제"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어이~ 장서방 콩밥을 먹어야지 왜 쇠철을 먹나"라며 한 남자를 정답게 부른다. 그러자 고철을 끈으로 묶다가 우리를 보고 일손을 멈추는 장판석 씨(65). 그는 부인이 관절염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들은 병으로 수술을 두 번이나 한 상황이다. '설상가상' 격으로 며느리도 집을 나가 손자는 고아원에 맡겨진 상태라고 한다. 그나마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장씨 뿐이다. 그러나 장씨도 조금만 움직이면 숨이 가빠지기 때문에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곤 주위에서 고철을 주워 kg당 55원에 파는 것 밖에 없다. 이처럼 만나는 이들마다 상황은 비슷하다. 이 동네에는 웃음소리를 듣기 힘들다. 모두들 '하루 하루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숨 짓는 소리만 가득하다. 그래서 이들에겐 봄이 오는 소리도 아직 들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따스한 햇살이 비치겠지'라는 작은 희망만 마음 속에 담고 숨을 이어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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