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기슭, 세라톤워커힐 호텔 정원에서는 500여명의 남북민간대표들이 모여 8·15 민족통일대회를
열고 있었다. 한반도기가 게양되고 남북대표 연설이 시작되었다.
"반세기하고도 칠 년 만에 남녘동포와 함께 하는 8·15민족통일 대회에 참석코자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서울에 왔습니다. 실로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을 극복하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여 세계에서 자랑스런 강성대국을 건설합시다."
북측대표들은 연설과 공연 곳곳에서 서울시민과 남녘동포를 불렀지만 정작 그들이 그렇게 그리워하는 서울시민과
남녘동포는 거기 그 자리에는 없었다. 그들은 당국이라는 또 하나의 장벽에 막혀 건국대학교에서 따로 통일대회를 열 수밖에 없었다. 얄궂게도 이날은
칠월칠석날, 견우직녀의 슬픈 전설은 그냥 전설이 아니라 아직 우리 앞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실이었다.
금년은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30년이 된 해이다.
백령도 어민은 서해교전 사태에서 보듯 서로 총질하지 않고 사이좋게 꽃게잡이를 하는 그림을 그릴 것이고, 해남 농민은 쌀과 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위기에 처한 농업문제를 통일 농업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할 것이며, 울산 노동자들은 통일된 조국에서 소외된 노동, 차별화된 노동의 극복방안을 구하고자 할 것이며, 청년 학생들은 효선이, 미선이를 죽인 미군을 철수시키고 자주적인 통일 조국을 건설하여 세계속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줄 인류미래에 대한 웅대한 포부를 설계할 것이다.
북녘 동포들의 입장은 어떤가.
지난번 금강산에서 열렸던 6·15통일 축전에서 북측 대표들의 한마디가 그들의 입장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통일을 보는 천차만별의 시각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 중에 미군 폭격으로 평양시가지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남지 않는 폐허 속에서도 나라를 일구었고 고난의 행군시기도 잘 견디어왔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은 미국과의 전쟁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세기 동안 미국과 전쟁을 치러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생산한 물자의 절반 가까이를 투입해 왔습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통일을 해야 살 수 있습니다. 통일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민족적 과제입니다."
이렇게 절절하고 절박한 요구가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통일을 지연시키거나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민족 분단의 음산한 틈바구니에 독버섯처럼 피어나 아직도 전쟁분위기를 부축이면서 전쟁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라, 미국의 외판원 노릇을 하고 있다.
▲ ©8.15민족통일대회 공동기자단 | ||
그들은 농협 창고에서 썩고 있는 쌀을 가축의 사료로 사용할망정 북녘 동포에게 마구 퍼줄 수 없다고 핏대를 올리기도 하고 5·18광주민중항쟁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조종되었다는 등 거짓 선전을 일삼으며 국민을 이간시키고 민족분열을 영구화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6·13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의 압승과 더불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우리의 통일 운동의 기반은 특정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 될 만큼 허약하지 않다.
반세기 동안 온갖 간난신고를 겪으며
다져진 기반이다. 이제는 반통일 보수세력과의 전 국민적 투쟁과 더불어 한 걸음 나아가 부문별 계층별 교류를 대폭 확대해 나가면서 각 계급
계층간의 통일 이후 공동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대중적 통일 기반을 축조하는 길이고 6·15공동 선언을 진일보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김정길(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 상임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