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버찌 열매
사라진 버찌 열매
  • 문틈 시인
  • 승인 2023.06.0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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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파트 단지의 녹지대에 피어 있는 클로버꽃에 날아다니는 벌들을 보았다. 반가왔다. 헤아려 보니 딱 세 마리였다. 클로버꽃은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하얗게 피어 있는데 찾아온 벌이 고작 세 마리뿐이다.

작년에는 벌들이 날마다 수십 마리씩 날아와 잉잉거렸다. 벌의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는 뉴스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클로버꽃밭 천지에 벌이 거의 없는 것을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까?

아버지가 만년에 십여 년간 벌치기를 하셨는데 어떤 해에는 벌 열 통을 가지고 오십 통으로 늘리기도 하셨으므로 나는 벌의 개체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별 일이 아닐 것이다, 설령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벌의 개체수는 금방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휑한 꽃밭을 보고 갑자기 이게 자연계의 변괴를 말해주는 것 같다는 두려운 생각이 나를 엄습해왔다. 오늘 산책 나가는 길에 벚나무 아래로 걸어가면서 문득 작년에 버찌 열매가 땅에 떨어져 보도블럭을 새까맣게 물들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올 여름엔 보도가 깨끗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벚나무를 올려 보았는데 버찌 열매가 드문드문 보일 뿐 작년과는 너무나 달랐다. 진한 자주색 열매들이 수도 없이 열려서 그 열매들이 함부로 땅바닥에 떨어지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혔더랬는데 열매가 거의 안 보인다. 올 봄에는 벌들이 날아오지 않아서 버찌 열매가 거의 열리지 않은 듯하다.

그럴 것이 지난 4월 병원에 갔을 때 병원 뜰의 활짝 핀 벚꽃 그늘 아래서 사람들이 셀카를 찍고 즐겼지만 그 때 꽃이 만개한 벚나무에는 벌들이 안 보였었다. 버찌 열매가 열리지 않은 벚꽃나무. 이것은 내가 사는 마을에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미 자연계에는 지금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벌의 수효가 턱없이 줄어들어 산에 들에 핀 꽃에 수분(授粉)이 제대로 안된다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농작물의 70퍼센트가 벌이 수분을 담당하고, 산의 야생 실과수들도 그렇다고 한다.

벌은 자연의 생태 운영에 필수적인 일손인 것이다. 식용 작물의 75퍼센트는 벌과 같은 외부의 힘이 작용해 꽃가루받이를 해 주어야만 열매를 맺는다. 사과, 배 같은 과일은 물론이고, 소가 먹는 클로버 같은 목초의 대부분은 벌이 짝짓기를 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산 짐승이나 새들의 먹이인 야생 밤, 도토리, 고욤 같은 실과가 크게 준다면 이건 끔찍한 일이다. 나는 벌써부터 산에 사는 산짐승인 다람쥐, 산토끼, 오소리들이 걱정된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산짐승들은 무엇을 먹고 살지?

자연계에는 벌이 수분을 안해주어도 열매를 맺는 식물들도 꽤 있다. 소나무, 옥수수, 부들, 벼 들은 바람이 꽃가루를 날려준다. 동백나무, 바나나는 새가 옮겨준다. 물속 식물들은 물이 꽃가루를 옮겨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벌의 존재감은 자연에서 절대적이다.

아버지는 밀원을 따라서 제주도에서 이른 봄 유채꽃을 보고, 전남 몽탄이나 경북 상주에서 아카시아꽃, 가을에는 강원도 영월에서 밤꽃을 찾아 해마다 벌통을 싣고 벌치기를 하러 다니셨다. 해마다 같은 곳을 찾아갔는데 늘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럴 것이 과수원, 밤나무, 참외, 오이, 토마토 농사에 백만 원군인 벌을 데리고 갔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지금은 벌이 몹시 귀한 존재가 되었다. 클로버꽃밭에 날아온 몇 마리의 작은 벌이 그렇게도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이 땅에 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을 견디기 어렵다는 말도 있다. 벌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아직 모른다.

지구를 둘러싼 전자파 그물 탓이라는 설도 있고,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인간이 뿌리는 살충제도 거론된다. 모르긴 하지만 자연을 함부로 다루는 인간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버찌에는 라이코팬과 안토시아닌 성분 등이 풍부하여 항암효과와 통증완화, 노화방지 같은 놀라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버찌로 만든 식품을 찾기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구두에 짓밟혀 인도를 보기 흉하게 물들이던 버찌 열매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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