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부르는 소리
자연이 부르는 소리
  • 문틈 시인
  • 승인 2023.02.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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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나무도 종당에는 죽는다. 산길을 걷다 보면 나무줄기에 길게 고랑이 패여 곧 쓰러질 것 같은 나무들도 있다. 오래된 나무들이다. 고목들은 제 할 일을 다하고 이제 마지막 여정에 오른다. 어쩌면 오는 새봄에 한 번 더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시들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죽은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무를 예로 들었으니 계속 나무를 들어 말하자면 생을 마친 고목은 한동안 쓰러지지 않고 마른 채로 서 있다.

그러다가 어느날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오는 세월 속에 서 있다가 땅바닥으로 쓰러진다. 쓰러져 흙으로 돌아간다. 나무를 구성했던 탄소, 산소, 수소, 질소, 철 등이 뿜어져 나와 흙, 물, 불,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나무는 흔적도 없이 완전무결하게 자연으로 돌아간다.

나무만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들의 여정의 끝이 이와 같다. 새로운 생명이 지상에 태어나는 것도 경이롭지만 죽어서 형체를 해체하여 완전무결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놀랍다. 만일 나무가 죽었는데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자연은 온통 나무로 꽉 채워질 것이다. 지상을 가득 채운 나무들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동물들, 식물들은 죽어서 흙이 되고, 물, 불, 흙, 공기로 흩어졌다가 인연을 만나 새로 합하여 새 생명으로 태어나고 하는 끊임없는 연결고리가 결코 끊어지는 법이 없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려는 이 순간 내가 손바닥으로 움켜 잡아보는 부드러운 한 줌 공기에는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의 피와 살을 이루었던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다.

자연은,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생명의 잔치판이다. 자연은 생명을 낳고 기르고 해체하는 사업을 영구히 지속한다. 그 어디쯤에 우리는 잠시 태어났다가 사라진다. 한 그루 나무가 생겨나 죽는 것을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도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자취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설령 그 이름을 화강암 비석에 새겨 천년을 세워 놓은다 한들, 1만년, 10만년, 100만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영원한 시간 속에서 견뎌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 시각에서 무생물인 흙, 물, 불, 공기가 조화를 이루어 생명을 낳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이다. 그 생명은 영구한 대자연의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 존재일지라도 신비 그 자체이다. 살아 있을 때 모든 생명은 기적을 체험하는 신비스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무용하기까지 한 것이다. 생명의 경험, 그것만으로 우리는 우주의 초대를 받은 대단한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당에 물, 불, 흙, 공기로 돌아간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무에서 유로 태어난 생명이라는 엄청난 경험을 하고 사라진다.

죽은 것들을 살려내는 자연의 부름에 따라 전 우주의 거대한 공사에 생명체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없이 사는 것을 탓할 일이 아니다. 내가 이름이 없는 존재라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말했지 않은가. 우리는 한 순간 생명을 얻어 우주를 체험하고 돌아간다. 어찌 보면 허무한 일 같지만 생각해보면 그지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다. 성현들은 생을 고해라고 한다. 고통 그 자체도 생을 이루는 필수 요소다. 나무들이 고통 없이 자라 고목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분명 아니라고 본다. 자연은 죽은 것들 속에서 생명을 불러낸다. 자연이 불러내면 생명으로 나타나고 자연이 부르면 돌아가는 것이 생명이다.

봄의 러브콜을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오는 만물의 시작을 본다. 지금, 멀리서 어마어마한 생명을 데리고 오는 봄의 걸음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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