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24회]-한산대첩과 안골포 해전 평가 (2)
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24회]-한산대첩과 안골포 해전 평가 (2)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02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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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인 딕키등 5명이 지은 『해전의 모든 것(2010년 발행)』에는 BC 1190년의 이집트 해전부터 1942년의 미드웨이 해전까지 20개 해전이 소개되어 있는데 여기에 1592년 한산도 해전도 소개되어 있다.

한산대첩도 (한산도 제승당 안)
한산도 제승당 내에 걸려있는 한산대첩도 

이 책은 BC 480년의 살라미스 해전(그리스 vs 페르시아), BC 31년의 악티움 해전, 1592년의 한산도 해전(조선 vs 일본), 1805년의 트라팔가 해전 (영국 vs 프랑스-스페인), 1905년 쓰시마 해전(일본 vs 러시아), 1942년의 미드웨이 해전(미국 vs 일본)의 전략, 전술, 무기, 지휘관 그리고 전함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러면 『해전의 모든 것(p 126-139)』에 소개된 한산도 해전을 살펴보자.

“ 1592년 한산도 해전 : 철갑 거북선, 무쇠 대포
1592년, 조선 수군은 천자문의 첫 네 글자 천지현황을 활용해 네 개의 표준화된 대포부대를 소유함으로써 심지어 영국군보다 앞서 있었다. (...)

조선 수군은 일본군이 백병전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으므로,이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판옥선에 높은 현측을 설비했다. ...
철갑을 두른 축소된 판옥선이란 발상을 통해 이순신으 ㄴ다시로서는 가장 강력한 수군 무기를 만들어 냈다. ... 거북선이 들이받기 공격을 어떻게 실행했을지도 하나의 의문이다. ...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일본을 상대로 최대의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군은 뒤늦게야 이순신을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
이순신의 연이은 승리로 조선은 5년동안 여유를 누릴 수 있었으며 이동안 히데요시로선 침공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
마지막 해전중에 이순신은 치명상을 입었다. 당시 수군통제사의 최후 명령은, 방패로 자기 시체를 가려 다른 병사들이 의기소침해지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

해상에서 기술에 대한 믿음은 한 번뿐이 아니라 거듭 그 정당성이 입증되었다.
심지어 그런 기술을 구현한 형태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을 때도 그랬다. 그리스의 불화살, 외돛상선과 장궁, 갈레아스 전함과 대포 운반대, 이 모든 무기들은 서구에서 과학기술적 혁신의 성과물이었다. 한편 이순신과 그의 거북선은 그가 구하고자 했던 나라에서 영원한 전설이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적어도 몇 군데에서 선상(船上) 혁신을 통해 진보가 가능하다는 신념이 생겨났다. 용골, 해군 대포, 범선으로 특징지어지는 대포의 시대가 지나간 뒤에도, 그런 신념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

2016년에 미국 해군연구소(USNI)는 거북선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세계 7대 군함’으로 선정했다. (서울경제신문 2016.4.10.)

# 거북선은 철갑선?

그런데 거북선은 철갑선인가 하는 논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먼저 사료들부터 살펴보자.

1592년 6월 14일에 이순신은 사천·당포·당항포·율포해전 승리를 조정에 보고한 장계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서 처음으로 거북선을 언급했다.

"신이 일찍이 섬 오랑캐가 침노할 것을 염려하여 별도로 귀선(龜船)을 만들었습니다. 앞에는 용의 머리를 달았고 입에서 대포를 쏘게 하고, 등에는 쇠꼬챙이를 꽂았습니다.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엿볼 수 없게 해서,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에서라도 쉽게 돌입하여 대포를 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

1592년 5월 1일 자 『선조수정실록』도 읽어보자.

“(...) 이에 앞서 이순신은 전투 장비를 크게 정비하면서 자의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거북선은 배 위에 판자를 깔아 거북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었고, 입은 대포 구멍으로 활용하였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구멍을 설치하였다. (...)”

이를 보면 거북선은 판옥선 위에 뚜껑(蓋板·개판)을 씌운 돌격선이었다.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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