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붉은악마 그리고 시인 김남주
[투데이오늘]붉은악마 그리고 시인 김남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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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 상임의장]

   " 피다 꽃이다
   꽃이다 피다
    그것이다    "

-김남주시인의 데뷔작 '잿더미' 중에서>

김남주는 70년대 중반부터 세계와 조국이라는 캔바스 위에 특유의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혁명과 정열의 붉은 물감으로 마음껏 붓을 휘두르다, 더 이상 조국에 대한 꿈을 꿀수 없게 되었을 때,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릴수가 없게 되었을 때 90년대 초반 벌레처럼 스믈스믈 앓더니 누렇게 뜬채 붓을 놓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과 함께 혁명의 시대는 갔다. 그리고 새로운시대 곱추와 난장이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10년후 6월 여름날, 김남주는 광화문 네거리에 나타났다. 부산역 광장에 나타났다. 금남로 도청앞에 나타났다. 붉은옷을 입고 붉은 띠를 두르고 하나가 아니라 셋이 아니라 수십수백만이 되어 나타났다. 전국을 아예 붉은 물감으로 물들여놨다. 그들은 피가 되었다. 분노가 되었다. 저주가 되었다. 아니 그들은 꽃이었다. 환희와 정렬이였다. 꿈과 희망이었다.

한국의 7,80년대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와 거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시절이다. 최루탄이 자욱한 아스팔트위에서 북과 괭과리를 두들기며 검은악마와 붉은 악마가 쫒고 쫒기던 시절이다. 독재에 대한 공포는 우리를 혼자 있게 할 수 없었으며 미래의 조국에 대한 정열은 우리를 거리로 내몰았다.

거리는 투쟁이었고 동지였고 해방이었다. 매우 어둡고 고통스러운 세월이었으면서도 우리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다. 꿈과 이상이 처녀애들 젖가슴처럼 부풀어 있었다. 노동자 농민들의 대투쟁 속에서는 장미빛 미래가 윙크를 하고 있었고 넥타이부대에게는 오색 찬란한 민주주의가 미소짓고 있었으며 청년학생에게는 자랑스런 통일조국이 손짓하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이 인류와 세계에 어떤 꿈과 이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거대담론으로 날을 세웠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 있는 땅. 분단과 분열을 극복한 새 조국 건설을 위해 새날의 희망을 위해 우리는 순수한 열정으로 죽음과 함께 싸웠다. 우리는 모두 페스트 환자였다. 광란의 넋이었다. .

그러나 검은 악마가 물러난 90년대의 한국사는 또다른 야누스의 얼굴이 되었다. 검은 악마와 간통한 닭대가리 같기도 하고 너구리 얼굴 같기도 한 기묘한 형상의 얼굴이 되었다. 조국에 대한 열정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꿈과 이상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지칠줄 모르던 민족에너지는 바람처럼 새어나갔다. 거리는 난쟁이와 곱추만 득실거리기 시작했다. 젊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던 꿈이 낡고 부패한 무리들에 의해 박살이 난 것이다.

2002년 잿빛거리에 다시 김남주가 보였다. 수백만의 붉은 열정이 모였다. 김남주의 붉디 붉은 넋이 붉은 악마로 환생한건 아닐까? 붉은 악마여 거친 파도가 되어 성난 홍수가 되어 낡은 정치를 쓸어버려라. 들끓는 용암이 되어 낡은 이념과 낡은 보자기를 태워버려라.

그리고 붉은 악마여 치욕의 야누스 얼굴을 오욕의 역사 저편으로 떨쳐내기 위해 몸통을 흔들어라. 팔다리를 휘젓고 목청껏 함성을 질러라. 지구가 꺼지도록 널을 뛰어라. 광란의 춤을 추어라. 너의 붉은 정렬 빛나는 이상의 몸통 위에 우리의 진정한 얼굴과 머리를 얹자.

마치 태극전사 몸통위에서 빛나는 히딩크 얼굴처럼.

/김정길(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상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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