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주 사람이다"
"나는 광주 사람이다"
  • 문틈 시인
  • 승인 2022.11.2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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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의(義)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불의를 보면 들고 일어나 의를 외쳤다. 광주학생항일운동, 5.18민주화운동이 그랬다.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임진왜란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곧 다시 정유재란을 맞아 왜적이 호남을 도륙할 때 한 젊은이가 왜적의 만행을 피해 무안현(務安縣)으로 피난을 갔다가 밤중에 길을 잃어 왜적에게 사로잡혔다.

왜적의 배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는 동안 한산도 앞바다에서 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배에는 왜적이 열 명도 채 못 되고 한 배에 포로로 탄 조선 사람이 더 많았다. 몰래 한 배에 탄 사람들과 모의하여 틈을 타서 왜적들을 죽이고 탈출하기로 계략을 짰다. 송타가 맨 먼저 적의 칼을 빼앗아 적을 다 베어 죽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왜적 한 명이 물에 몸을 던져 도망가서 다른 배의 왜적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 때문에 바다 한 가운데서 도망가지 못하고 송타와 그 일행은 다른 왜적들의 수중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는 죽음에 이르러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광주에서 온 송제민의 아들 송타이다. 불행히 적의 수중에 떨어졌고 이제 죽게 되었다. 포로로 잡혀 배에 탄 그대들이 혹 적의 수중을 벗어나 귀환하거든 우리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기 바란다.”

이렇게 외친 그는 바다에 몸을 내던졌다. 이 사실을 함께 붙잡혔던 전라도 담양 창평의 진사 이신(李紳)이라는 사람이 먼저 포로로 잡혀 일본에 가 있던 강항(姜沆, 1567∼1618)에게 전하여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4년 뒤 1600년에 강항이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상세히 전해 주었다. 이에 송타가 남긴 옷을 묻고 화암(花巖) 아래서 장사를 지냈다. 의기로운 장부가 아니면 이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가 죽었을 때 나이 불과 31세였다.

광해군 때의 문인 권필(權韠)은 송타의 이런 의로움을 보고 그의 인(仁)을 알았고, 그의 죽음에서 또 용(勇)을 알았다고 했다. 권필은 “송타 같은 사람이야말로 옛날의 이른바 선인(善人)이 아니겠는가”라고 칭찬했다. 살아 있을 때 곤궁했고 죽을 때는 참혹했으니, 세상 사람들이 그저 하는 말로 “하늘은 선인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어찌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송타가 적의 포로가 된 뒤로 그의 아우 송장(宋檣)이 부모를 모시고 북쪽으로 갔다. 장성의 진원현(珍原縣)에 이르러 허물어진 집에 들어가 쉬는데 왜적 한 명과 맞닥뜨렸다. 적이 부모를 해칠까 두려워 곧바로 나가서 왜적을 유인해 가다가 도중에 왜적에게 다른 동료가 없는 것을 보고 때려 죽였다. 그리고 돌아가려 할 때 또 다른 왜적에게 붙들려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 나이 15세 때였다.

적장이 그의 용맹을 사랑하여 머물러 있게 하려고 미녀 세 사람을 데려다 놓고 마음대로 고르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응하지 않고 날마다 조선으로 돌아올 궁리만 하였다. 10여 년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왜인들의 회유를 물리치고 승려 생활을 하다가 귀국했다. 형 송타 못지않은 기개를 가진 광주인이었다.

송타는 숙종32년(1706)에 광주에 건립된 운암서원(雲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정조12년(1788) 9월 8일 《일성록》에 전라도의 유학 민백심(閔百諶)이 죽은 송타에게 벼슬을 추증해 달라고 정조에게 글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송타는 송제민(宋濟民)의 아들로서 물에 몸을 던져 순절하여 향인(鄕人)들이 그 아비의 사우에 올려 배향(配享)하였으니, 특별히 벼슬의 은전을 시행하는 것이 정표하는 도리에 맞을 듯한데, 상께서 재결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같은 요청에 정조는 벼슬을 추증하도록 하였다. 광주인의 의로움은 들을수록 가슴을 친다. 지금은 참으로 어려운 시절, 광주인의 기개로 헤쳐 나갈 것을 응원한다.

(‘송생명행기(宋生名行記)’ 참조 및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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