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지 않는 순간들
머무르지 않는 순간들
  • 문틈 시인
  • 승인 2022.11.0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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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1분 1초도 머무르지 않는다. 밤이고 낮이고 쉬임없이 흘러간다. 나는 가만 있는데 무심한 세월은 마구 지나간다. 잠이 아니 오는 가을밤엔 이런 세월의 거침없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순간 갑자기 외롭고 쓸쓸한 존재감이 엄습한다. 마치 얼음조각이 녹듯이 나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녹아내리는 것 같다. 생의 본질은 누구도 어찌해볼 수 없는 이런 절대 고독인가 싶다.

이렇게 세월이 끊임없이 흘러가노라면 종당엔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언젠가 그때에 당도하면 나는 나이가 들고 우주 만상과 작별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게로 흘러오는 하루가 이틀이 더없이 귀한 시간임을 절실하게 느낀다.

날마다 내가 보는 것, 발을 딛고 걷는 풍경, 어머니, 형제들, 아내, 자식, 지인들, 그 누구도 소중하고 귀하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무, 강아지, 구름, 하늘, 별, 개미, 바람소리, 새울음,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

나는 자연과 우주에 가득찬 놀라움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나를 위한 어마무시한 우주라는 무대가 신비스럽기만 하다.

삶이 심히 고달파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조차도 살아 있으니까 해보는 호사에 다름아니다. 고통조차도 우주가 보내주는 선물 같다고 하면 너무 한 말일까. 옛사람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다.

아무리 삶이 고통스러워도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죽어서 간다는 저승보다 낫다는 이야기. 옛사람들의 평범한 어사에는 엄청난 진실이 있다. 삶을 놀라운 우주의 신비가 빚어내는 축복이라고 한다면 마구 흘러가는 세월을 탓할 것이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날들이 온다 간다. 그것들은 선물이다. 이 귀한 선물 앞에서 나는 감사해야 한다. 맞다. 감사하는 순간 모든 것은 가치가 생긴다. 감동하는 순간 삶에 대한 감사가 절로 생겨난다. 어떤 사물이 가치를 갖는 것은 진정코 내가 감사할 때이다.

나는 삶에 감사한다.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것만큼 감사할 일이 따로 없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감사할 일을 찾기 위해서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우주 만물이 온통 감사로 가득차 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서남북 그리고 하늘을 향해 큰 절을 올리며 ‘감사합니다’하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살면서 자주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고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답도 구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온 우주의 힘으로 태어나 여기 살아 있는 것이다.

기적이 따로 없다. 그리고 나를 위해 이 우주가 마련되어 있음을 보고 그 신비함에 영혼이 떨린다. 세상 만물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감사 인사를 드려야 마땅하다. 때문에 세월이 거침없이 흘러가는 것을 탓할 것이 없다.

외롭고 쓸쓸함조차도 충분히 삶의 누림이다. 내가 겪는 모든 일은 삶을 누리는 일이다. 누구는 죽음이 삶을 엿본다고 하지만 나는 죽음은 생각할 시간이 없다. 고통, 외로움이 삶을 빛내는 가치라는 것을 안 이상 다른 무엇도 삶을 흔들 수 없다.

삶은 생각할수록 아름다운 것이다. 세월이 빨리 간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그 세월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부모를 공양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나 선한 뜻을 펴서 그 일을 줄기며 열중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삶에 무슨 커다란 목적, 위대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살아 있는 것만으로 소임을 다한 것이나 같다.

삶의 최고의 가치는 살아 있는 것, 살아남는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우주가 나를 내놓고 나는 우주를 바라본다. 삶은 살수록 신비 그 자체다. 그 신비를 나는 날마다 누리고 있다.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삶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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