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인생
재미있는 인생
  • 문틈 시인
  • 승인 2022.10.1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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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거의 술을 마신 적이 없다. 언젠가 강력한 권유로 술을 여러 잔 마신 적이 있는데 온몸이 나사가 풀린 듯 흐느적거리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직장 회식에 가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되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학창시절 교실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한두 번 피워보았는데 기침만 심하게 할 뿐 거부감이 심하게 들었다. 더구나 입과 콧구멍으로 푸르스름한 연기를 내뿜는 것이 기이하게 보여 담배는 단 한 번도 피지 않았다. 담배연기가 왜 귓구멍으로는 안 나오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귀, 코, 목은 다 연결되어 있는데 말이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아내는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아침 식사 후 반드시 커피를 한 잔 마신다. 그런데 나는 커피 맛을 모른다. 나는 우선 커피에 든 단맛이 싫은 데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기 때문에 극력 피한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 그날 밤은 꼬빡 잠을 못이루고 새고 만다. 몸이 커피를 거부한다.

나는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 밀가루에 포함된 글루텐이 꺼림직한 데다 한결같이 단맛이 싫다. 빵에는 설탕이 거의 반 가까이 들어있다. 빵을 먹으면 몸이 설탕으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난 단 것을 아주 싫어한다. 왜 단맛을 싫어하느냐고 물으면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지요. 쓰라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좋은 시간이 온다는 말인데 나는 아직 인생의 쓴맛을 더 겪어야 하는 시기랍니다.”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헷갈려 듣지만 하여튼 나는 그런 식으로 대답한다.

단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실제론 건강을 생각해서다. 따로 단맛을 취하지 않아도 우리는 밥을 먹거나 야채를 먹거나 무엇을 먹거나 몸은 그 식품에서 당분을 찾아낸다. 필요한 당분을 빼내 몸에 저장해두었다가 연료로 사용한다.

나는 짠맛을 싫어한다. 싱거운 맛이 좋다. 내가 먹는 음식을 먹어보고 그렇게 싱거운데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싱거운 음식에 맛을 들이다 보면 오히려 싱거운 음식에서 진정한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전라도 음식은 대체로 짠 음식이 많다. 옛날 냉장고가 보급되지 않던 시절 따뜻한 남쪽 지역에서 오래 두고 음식을 먹으려면 소금에 절여 보관해야 해서 짠 음식이 다양하게 발달된 것 같다.

나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쇠고기, 돼지고기 같은 육고기는 거의 먹지 않는 편이고, 가끔 닭고기나 오리고기는 먹는다. 이것 역시도 건강을 생각해서다. 육고기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 육고기는 가급적 먹지 않는다.

고기가 맛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나이가 좀 든 사람에게 육고기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고 나서는 애써 탐하지 않는다. 주위에선 남의 살도 먹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단백질 섭취는 달걀이나 두부, 콩, 우유, 생선 같은 것으로 대체한다.

나는 먹방에 즐겨 나오는 것 같은 화려한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음식들은 한두 번 먹으면 질리고 만다. 가령 짜장면이 맛있다고 해도 그 음식을 매일 상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또 흰 쌀밥은 잘 먹지 않는다. 내가 먹는 밥은 현미, 콩, 보리, 기장 같은 것이 섞인 잡곡밥이다. 일 년 열두 달 흰 쌀밥을 먹는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이것 역시 건강을 생각해서다.

내가 유독 건강을 챙기는 것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크게 아파본 적이 있어서다. 건강에 좋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맛이 있는 것이라고 해도 나는 손을 대지 않는다. 이렇게 가리는 것이 많은 내게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대체 그렇게 맛있는 음식들을 멀리하고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사느냐?”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밥은 날마다 무슨 맛으로 먹느냐?” 밥은 아무런 맛이 없다. 아무 맛이 없으므로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인생에도 아무런 재미가 없으므로 사람들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을 평생 되풀이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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