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고 바람 불고
비 오고 바람 불고
  • 문틈 시인
  • 승인 2022.06.3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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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비 오고 바람 부는 곳이다. 더러 개인 날들도 있지만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늘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들의 연속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고단한 세상이라는 말이다. 옛날보다 잘 살게 되었다고들 말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딱히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다.

잘 먹고 잘 입고 오래 살고 그런 이유들로 잘 산다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가 옛날보다 훨씬 멀어져 남을 믿을 수 없는 세상살이를 보면 과연 잘 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변에 보면 불행을 당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 빚에 쪼들리는 사람, 직장이 없어 실업자로 방황하는 사람, 집을 마련할 길이 없어 좌절한 사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고독하고 외롭게 지내는 경우, 알고 보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개개인의 이 모든 불행들을 사회탓이라고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워낙 인생이란 것 자체가 난코스여서 타인의 손을 잡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때 사람 사이에 필요한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남의 불행을 가엾게 바라보는 마음이다. 남의 슬픔을 위로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못사는 법이다.

겉으로 남들을 보면 다들 ‘잘 나가는 사람’같지만 그 사람이 사는 지붕을 뜯어보면 남모를 고통이 도사려 있다. 사람들은 모두 한두 가지씩 어려움을 지니고 산다. 호남고속도로에서 서울로 가는 차량들을 세워놓고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집집마다 어느 만큼씩의 아픔이 있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이런 기사를 보았다. 요즘 청년 열 명 중 아홉 명이 ‘위로 포비아(phobia)’ 상태에 있다고 한다. 사전에 보면 포비아는 “불안장애의 한 유형으로 예상치 못한 특정한 상황이나 활동, 대상에 대해서 공포심을 느껴 높은 강도의 두려움과 불쾌감으로 인해 그 조건을 회피하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게 약점이자 흠이라고 생각하여 가까운 사이에서도 위로받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약해 보이면 내 존재감이 흔들릴까 봐 두려워한다. 가끔 다른 사람이 ‘괜찮아’라고 말하면 오히려 화가 난다. 힘이 들 때는 혼자 삭인다. 이런 식으로 위로받는 것을 불안해한다니 참으로 힘든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이런 마음 상태가 청년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마음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일 년에 어느 하루 날을 잡아 자기 자신을 위해 실컷 울어주는 날을 지정하면 어떨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슬퍼도 고통스러워도 속으로 꾹 참고 씩씩한 듯이 돌진해나가는 외로운 늑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더 잘 살아보겠다고, 기어코 집을 마련하겠다고, 내 아이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키워보겠다고, 입을 꾹 다물고 안 외로운 척, 안 아픈 척,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는 얼마나 지독한 슬픔이 쌓여 있을 것인가.

만일 사회에 그 모든 것들의 책임이 있다면 삶을 무한경쟁으로 몰아가는 물질만능의 세태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잡초라고 볼 수도 있는 그러나 씩씩하게 피어난 개망초꽃이 가시옷을 입은 붉은 장미보다 덜 아름답다고 보는 것은 편견이다. 그렇게 보는 것은 일종의 집단 린치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모두가 한량처럼 먹고 사는 국회의원이 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손발을 움직여서 먹고 사는 고단한 일상인이 나는 더 위대하게 보인다. 개망초꽃은 그대로 아름답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타인의 손을 잡아야 한다.

인디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무지개도 없다(no rain, no rainbow).’ 비 오고 바람 부는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만으로 그는 승리한 사람이다. 인생에 패배란 없다. 왜냐하면 살아남는 것이 승리이기에. 울어라, 슬퍼하라, 괴로워하라. 사노라면 무지개가 보일 것이다. 당신은 지금 대단한 승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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