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79) - 러일전쟁 발발(勃發)과 한일의정서 체결
조선, 부패로 망하다 (79) - 러일전쟁 발발(勃發)과 한일의정서 체결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2.06.13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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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2월 6일에 일본은 러시아와 국교를 단절했다. 이 날 아침에 나가사키 근처의 사세보 군항에서 연합함대의 제1전함대와 제2전함대가 중국 뤼순으로 출발했다. 제3 전함대와 제7 전함대는 대마도의 다케시키 항을 출발하여 6일 저녁 무렵에 진해만을 점령했다. 이어서 육전대가 상륙하여 마산의 전신국을 점령했다. 이것이 일본의 대한제국 첫 침략이었다. (와다 하루키 저 · 이경희 역, 러일전쟁과 대한제국, 2011, p 59-60)

러일전쟁과 진해
러일전쟁과 진해

2월 8일 밤,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끄는 일본 해군은 중국 여순항에 있는 러시아 극동 함대를 기습공격했다. 이날 우류 소토치키의 일본 함대 14척은 제물포에 정박한 두 척의 러시아 전함에 대해서도 기습공격했다. 오후 4시경 카레예츠호가 자폭하였고, 6시경 바라크 호가 침몰하였다.

2월 9일에 러시아가 일본에 선전포고했고, 10일에 일본이 러시아에 선전포고했다.

2월 9일에 일본군 1천 명이 서울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도망치고 구중궁궐도 텅 비었으며 조정 대신들도 숨기에 바빴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나라가 전쟁터가 되었는데도 ‘국외중립 선언’ 이상의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너무나 무능하고 안일했다.

2월 23일에 주한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고종을 위협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였다. 1903년 10월부터 하야시는 이를 추진했다. 하야시는 정부 고관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라 생각하고 고종의 독단적 정국 운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외부대신 이지용과 군부대신 민영철, 이근택 등을 포섭했다. 이지용 등은 이용익 등 고종 측근 세력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로비 자금 1만 원(지금 시세로 13억 원 정도)이 필요하다고 일본 측에 요구하여 돈까지 받았다.

그런데 1904년 2월 8일에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12일에 파블로프 러시아 공사가 철수해버리자 하야시는 고종에게 조약 체결을 압박했다. 결국 고종은 2월 13일에 외부대신 이지용을 일본 공사관에 보내 교섭을 재개하게 했다. 그러나 친러파 이용익은 일본과 조약을 체결했다가 나중에 러시아가 승리하면 곧바로 대한제국 병탄의 이유가 된다며 강력 반대했다.

한편 러시아군이 안주와 평양 부근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고종도 러시아가 승리할 가능성을 기대하면서 현상건·이학균 등 측근들을 불러들이는 등 조약 체결을 연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용익은 2월 22일에도 외부대신 이지용을 찾아가 만일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면 대역죄인으로 처분받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지용은 후환이 두려워 조인을 거부하고도 싶었지만, 그럴 경우 하야시로 부터 받은 로비 자금이 문제가 될 판이었다.

2월 22일에 일본은 이용익을 전격 납치하여 일본으로 압송하였고, 육군참장 이학균 그리고 육군참령 현상건 등을 연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용은 2월 23일에 아침 서울 밖으로 도주하려 하였다. 하야시는 이를 막고 전문 6조의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조인에 성공했다. (서영희 지음, 일제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2012, p 29-36)

한일의정서 제1조의 ‘시정개선 충고’에 따라 일본의 내정 간섭 근거가 마련되었고, 제4조에 따라 일본 군대 주둔의 길이 열렀으며, 제5조에 따라 러시아 등 다른 열강과 대한제국 간의 독자적 교섭의 길이 막혔다.

창원시립 해박물관
창원시립 해박물관

그런데 한일의정서를 체결한 이지용은 고종의 친척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형 이최응의 손자인데, 그는 1905년에 내부대신으로 을사오적이 되었고, 1910년에 나라가 망하자 백작 작위를 받은 친일 매국노였다.

한편 한일의정서 선포후 영국의 「런던타임즈」는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이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영구히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 지금부터 일본에 있어서 한국은 마치 우리 영국에 있어서의 이집트와 같다. (...) 한국의 독립은 형식적인 독립이다. 일본이 말하는 충고권이란 사실 얇은 종이 한 장을 덧씌운 명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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