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4) - 極寒(극한)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4) - 極寒(극한)
  • 시민의소리
  • 승인 2022.05.1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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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 울고 가는 저 하늘은 푸르르기만 하구나 : 極寒 / 연암 박지원

모진 추위가 몰아닥치면 온통 세상이 달리 보이는 수가 있다. 푸르른 산도 검게 보이고 깎아지를 산의 바위도 그 정경을 자랑하더니 쏟아질 듯한 날카로움을 보인다. 모진 추위에 한양의 모습을 시인의 눈에는 달이 보였으렸다. 그 뿐이겠는가. 사람의 발길도 끊어지고 옷깃을 추겨 세운 사람들은 종종 걸음으로 안식처를 찾아간다. 매란 녀석 한 마리 하늘을 지나자 나무숲은 긴장감이 감돌고, 학이 울고 가는 저 하늘은 푸르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極寒(극한) / 연암 박지원

북악산은 수루처럼 소나무는 검은 빛

매 지나자 나무숲은 긴장감에 감돌고

학 우는 저 하늘에는 푸르기만 하구나.

北岳高戍削 南山松黑色

북악고수삭 남산송흑색

隼過林木肅 鶴鳴昊天碧

준과임목숙 학명호천벽

학이 울고 가는 저 하늘은 푸르기만 하구나(極寒)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북악산은 수루戍樓처럼 내려 깎아질렀고 / 남산의 소나무는 모두가 온통 검은 빛일세 그려 // 매란 녀석 한 마리 지나자 나무숲은 긴장감이 감돌고 / 학이 울고 가는 저 하늘은 푸르기만 하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혹독한 추위]로 번역된다. 혹독한 추위는 계절적으로 음력 12월(양력은 1월)에 온다. 북으로 날아갔던 오리와 학이란 녀석들이 금수강산이 시베리아보다 따뜻하다고 찾아온 뒤로 매서운 추위가 찾아온다.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몹시 심한 추위로 극한極寒이다. 어깨를 추겨 세우고,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걷는 무리들이 많은 계절이다. 시인은 이런 극한의 모습을 자연 속에서 찾아냈다. 북악산은 수루戍樓처럼 깎아질렀고, 남산의 소나무는 검은 빛이라고 했다. 북악산은 듬성듬성 서있던 활엽수들은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없어서 하얀 옷 입은 바위가 수루처럼 깎아질렀다고 했고, 푸르름을 자랑하던 소나무도 어깨를 펴지 못해 검푸른 색이었다는 서경적 지향이다. 자연적 지향세계에 흠뻑 취했던 화자는 겨울 철새인 매와 학의 놀이 공간을 대비해 보인다. 매 지나자 나무숲은 긴장감이 감돌고 학 우는 저 하늘은 푸르다고 했다. 전구와 후구의 대비적인 비유는 시의 격을 높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작품이다. 검은 색과 푸른색의 대비, 깎아 지르다와 긴장이 감돌아 엄숙하다는 대비들이 그것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북악 수루 깎아질러 남산 온통 검은 빛이, 매 지나자 긴장감 돌고 학이 우니 푸르름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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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작가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1765년에 처음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알려지며, 이후 과거시험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박제가,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유금 등과 친분이 두텁게 교우했다.

【한자와 어구】

北岳: 북악산. 高戍: 수루처럼 높다. 削: 깎아지르다. 南山: 남산. 松: 소나무. 黑色: 검은 빛이다. // 隼過: 매가 지나다. 매가 날아 지나가다. 林木: 나무 숲. 숲 속의 나무. 肅: 긴장감이 감돌다. 鶴鳴: 학이 울어대다. 昊天: 하늘. 碧: 푸르다. (오직) 푸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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