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3) -구장(鳩杖)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3) -구장(鳩杖)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5.09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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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같은 흰 옷을 다소곳이 입고 앉아 있으니 : 鳩杖 / 첨재 강세황

길을 걷다가 보면 비둘기 떼를 가끔 본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발길에 차이는 수도 있다. 먹을 것을 찾다 보면 사람이 오는 줄도 모른다. 사람을 보면 제법 먹을 달라고 보채는 모양새도 느끼게 된다. 사람을 따르른 비둘기가 지팡이 끝에 앉아 있었다. 동그마니 앉아 있는 모습의 느낌이 깊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비둘기가 눈 같은 흰 옷을 다소곳이 입고 앉아 있으니, 마치 나라의 국상을 아는 것만 같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鳩杖(구장) / 첨재 강세황

지팡이 위에 있는 한 마리 비둘기는

날지도 아니하고 울지도 못하는데

눈 같은 흰 옷 입으니 나라국상 알고 있나.

杖上有一鳥 不飛又不鳴

장상유일조 불비우불명

身被白雪衣 如一東土喪

신피백설의 여일동토상

눈 같은 흰 옷을 다소곳이 입고 앉아 있으니(鳩杖)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첨재(忝齋)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지팡이 위에 한 마리 비둘기 오똑하게 앉아 있네 / 아직 날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한다 해야 할꺼나 // 눈 같은 흰 옷을 다소곳이 입고 앉아 있으니 / 마치 나라의 국상까지를 아는 것만 같아라]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지팡이에 앉은 비둘기]로 번역된다. 비둘기나 참새 같은 날짐승들을 보면 동구마한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수가 많다. 어쩌면 높은 곳에 앉아 주위를 응시하는 모습이 배꼽을 쥐기도 한다. 염소란 녀석이 부엌 안의 부뚜막에 올라 재롱을 부리는(?) 모습은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랑스럽기도 한단다. 시인은 뾰족한 지팡이에 앉아 있는 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던 모양이다. 장난기어린 모습도 연상하게 되고, 대담성도 엿보게 된다. 지팡이 위에 앉아 있는 한 마리 비둘기가 날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있다는 엉뚱한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에게 재롱을 부리거나 희롱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즈음, 화자는 후구에서 다소 엉뚱한 생각을 젖어 본다. 사람이 죽으면 지붕 위에 흰 옷을 던져 초상을 알리는 풍습이 있었다. 국상國喪을 당하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음을 상상하게 된다. 하얀 색깔을 한 비둘기가 눈처럼 흰 옷 입었으니, 나라의 국상을 아는 것 같다는 시상이다. 분명 좋은 시상으로 착상했던 작품의 면면이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지팡이 위 비둘기가 날지 않고 울지 않고, 흰옷 입고 앉아 있어 나라 국상 아는 건가’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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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이며 평론가로도 알려진다. 명문가 출신이지만 일체의 벼슬을 단념하고 경기 안산 초야에 묻혀 학문과 예술에만 전념했다. 서화계를 계도한 서화비평가이자 김홍도, 신위 등을 키운 문예계의 큰 스승으로 명망이 높다.

【한자와 어구】

杖上: 지팡이 위에는. 뾰족한 지팡이 위. 有: 있다. 앉아 있다. 一鳥: 한 마리 새. 不飛: 날지 않는다. 又: 또. 또한. 不鳴: 울지 않는다. // 身: 몸. 몸에는. 被白: 흰 옷을 입었다. 雪衣: 눈 같은 옷. 곧 흰 옷을 뜻함. 如: ~한 것만 같다. 一東土: 나라. 혹은 한 나라. 喪: 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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