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2) -전가(田家)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2) -전가(田家)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5.02 0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엌엔 먹다 남은 야채 몇 뿌리나마 달라네 : 田家 / 혜환재 이용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북적거리는 도시와 한가하기 그지없는 농촌의 차이는 많았다. 요즈음 도농都農의 극심한 차이를 그 때나 지금이나 실감하게 된다. 도시에 살다가 담장도 없이 살고 있는 시골집의 풍경은 생소하기 그지없는 장관을 이루었다. 농촌을 찾는 시인이나 묵객 그리고 사대부들은 그 풍경을 읊기에 바빴겠다. 뜰에는 수둑하게 쌓여있는 우렁이 빈 껍질이 있고, 부엌에는 먹다 남은 야채 몇 뿌리나마 달란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田家(전가) / 혜환재 이용휴

아내는 아이 재워 남편은 외양간에

뜰 위에 쌓여있는 우렁이 빈 껍질들

부엌에 먹고 남은 것 몇 뿌리를 달라네.

婦坐搯兒頭 翁傴掃牛圈

부좌도아두 옹구소우권

庭堆田螺殼 廚遺野蒜本

정퇴전라각 주유야산본

부엌에는 먹다 남은 야채 몇 뿌리나마 달라네(田家)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혜환재(惠寰齋) 이용휴(李用休:1708~1782)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아내는 앉아서 아이를 재우고 앉아 있고 / 남편은 몸을 구부려 외양간을 치우고 있네 // 뜰에는 수북이 쌓여있는 우렁이 빈 껍질들이 있고 / 부엌에는 먹다 남은 야채 몇 뿌리나마 달라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농촌의 한가한 풍경]으로 번역된다. 선현들이 남긴 시문이나 화폭을 채웠던 농촌 풍경은 대체적으로 한가하기 그지없는 절경을 담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시문이나 화폭에 담긴 우리 농촌의 풍경의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내일을 위한 재충전만은 아닌지 알 수도 없다. 오늘날의 풍요를 미리 예감하고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농촌의 전형적인 풍경을 노인장이 담뱃대를 입에 물고 새를 쫓아내는 그런 풍경뿐만 아니라 아낙네가 아이를 재우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어 이색적이다. 아내는 가만히 앉아서 아이를 재우고 있고, 남편은 허리를 구부려 외양간을 치우고 있다고 했다. 봄에 부지런히 씨앗을 뿌리고 농한기의 한 틈을 타서 가사에 주력하는 모습의 한 단면이다.√ 화자는 집안 밖의 모습이란 그림을 그리기에 바쁜 모습을 보인다. 뜰에는 가득히 쌓여있는 우렁이의 빈 껍질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부엌에는 먹고 남아 있는 몇 뿌리의 달래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는 가지런하지 않는 것같은 정결함을 보인다. 부산한 것 같으면서 한가한 농촌의 단면을 빠짐없이 그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아내는 아이 재우고 남편은 외양간 치워, 뜰엔 우렁이 껍질 부엌엔 야채 뿌리들’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작가는 혜환재(惠寰齋) 이용휴(李用休:1708∼1782)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실학자이다. 여섯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인 덕산현 염곡을 거쳐 12세 때 잠시 서울에 살았다가 이익이 살고 있는 광주 첨성리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성호를 모시고 오직 학문 수련에 힘썼다고 한다.

【한자와 어구】

婦坐: 아내는 앉아 있다. 搯兒頭: 아이를 재우다. 아이 머리를 가볍게 두르리다. 翁傴: 남편(늙은이)은 몸을 구부리다. 掃牛圈: 외양간을 청소하다. // 庭堆: 정원에 쌓이다. 田螺殼: 우렁이 빈 껍질. 廚遺: 부엌에 남아있다. 野蒜本: 야채 뿌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