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73) - 민영환의 어리석음과 군수의 자리값
조선, 부패로 망하다 (73) - 민영환의 어리석음과 군수의 자리값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2.05.02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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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영환의 어리석음

1901년에도 매관매직의 풍조는 여전했다.

덕수궁 중화전
덕수궁 중화전

1894년 갑오개혁 이전보다 훨씬 더 심했다. 아무리 종친이나 외척 혹은 임금과 가까운 자라도 감히 한 자리도 은택(恩澤)으로 얻을 수 없었다, 관찰사 자리는 10만 냥 내지 20만 냥이었고, 일등 수령 자리도 5만 냥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서상욱은 민영환의 외삼촌이다. 민영환은 고종에게 군수 자리를 달라고 오래전에 아뢰었는데, 고종은 “너의 외숙이 아직까지 군수 한 자리도 하지 못했단 말이냐?”라고 말할 따름이었다.

얼마 후에 민영환이 다시 외삼촌 일을 아뢰자 고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잊을 뻔하였다. 곧바로 임명하도록 하겠다.”하고는 서상욱을 광양군수에 임명하였다.

민영환은 집에 가서 기쁜 얼굴로 어머니에게 “오늘 임금이 외숙에게 군수 자리를 허락하셨으니, 천은(天恩)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러자 그의 어머니가 실소(失笑)하면서 “네가 이처럼 어리석고도 어리석은 척리(戚里 임금의 외척)란 말이냐? 임금이 언제 한자리라도 은택으로 제수한 적이 있었더냐? 어찌하여 너에게만 특별히 은덕이 미친단 말이냐? 내가 이미 5만 냥을 바쳤단다.”라고 말했다.

이 일화는 황현의 『매천야록』에 나온다. (황현 지음·임형택 외 옮김, 역주 매천야록 하, p 106-107)

# 군수 임기를 16개월로 정하다

1903년에 고종은 군수의 임기를 개정하여 16개월로 정하였다. 이때 군수를 임명함에 있어 금액의 다과에 따랐는데, 고종은 관직을 자주 팔면 돈이 많이 생긴다고 여겨 1년도 못 되어 군수를 교체시켰다.

심지어 1년에 5명의 군수를 맞이한 군(郡)도 있었다. 돈을 바치고 임명된 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아서 군수로 부임하자마자 수탈을 일삼았다. 그러나 바친 돈이 워낙 많아 본전을 뽑을 수 없었고 파산한 군수들도 생겨, 군수 자리를 사려고 하는 자가 크게 줄었다. 고종은 이 점을 깨닫고 마침내 기한을 16개월로 정한 것이다.

이때 기호(畿湖) 이북 지방에서는 백동전(白銅錢)을 사용하고 영호남 지방에서는 엽전을 사용하였는데, 백동전 1냥이 엽전 70푼에 해당되어, 영호남 지방에서 군수 자리를 사는 사람은 서울에서 백동전을 상납하고, 시골에서 엽전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10냥이 실제로는 7만 냥이었다.

그리고 백성은 조세를 엽전으로 바쳤는데, 서울에는 백동전을 바쳐, 그 차익을 챙긴 것이 자기 봉급의 10배나 되었다. 그래서 영호남 지방의 군수 자리는 특별히 좋은 자리였다. (황현 지음, 위 책, p 138-139)

# 내부대신 김주현 파면

1903년 10월에 고종은 수령들을 선발하는데 물의를 일으킨 내부대신 김주현을 파면하였다. (고종실록 1903년 10월 19일)

“의정부 의정 이근명이 아뢰었다.

‘신이 어제 경연에서 폐하를 뵈온 후 수령들을 신중히 선발하는 일로 명을 받고 그에 따라 내부(內部)에 조칙(照飭)하였습니다.

방금 해부(該部)의 주본(奏本)을 보건대 많게는 70여 자리나 되는 데다가 혼탁하여 물의(物議)가 비등하니, 이것이 어찌 신중히 간택하는 뜻이며 군명(君命)을 받들어 널리 알리는 도리이겠습니까? 이것은 대신이라고 해도 너그럽게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내부대신 김주현은 우선 면직시키고 해당 주본을 즉시 시행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러자 고종은 제칙(制勅)을 내렸다.

‘수령을 신중히 간택하는 것은 어느 때라도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하물며 백성들의 일을 더욱 걱정하는 때이겠는가? 내부 대신은 본 관에서 면직시키고 원래의 주본은 시행하지 말라.’ ”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1903년에 내부대신 김주현이 면직되었다. 김주현이 임금께 올려 군수 70여 명이 새로 임명되었는데, 고종의 뜻이 중간에 변해 모두 면직되고 김주현 또한 파면되었다. 당시 군수 자리는 5, 6만 냥을 바쳐야 했는데, 졸지에 자리를 빼앗겼으니 경향에 파산한 집안들이 속출하였고, 시전(市廛)에서 어음을 쓴 자는 줄줄이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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