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그늘 아래서
꽃그늘 아래서
  • 문틈 시인
  • 승인 2022.04.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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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꽃잎들이 떨어져 온통 꽃길이 되어 있다. 꽃잎들이 떨어져 마치 수를 놓은 듯한 꽃길이 화려해서 함부로 딛고 걷기가 망설여진다. 주단을 깔아놓은 듯한 길을 흙 묻은 구두를 신고 걷는 느낌이랄까. 떨어진 꽃잎들을 피해 발걸음을 조심스레 한 걸음씩 옮긴다.

바람이 불 적마다 꽃잎들은 공중에 흩날려 나비떼처럼 날아다닌다. 포롱 포롱 여기 저기로 날다가 땅에 풀숲에 개울에 떨어진다. 나는 팔을 내뻗어 떨어지는 꽃잎을 손바닥에 받아보려 뛰면서 움직여 본다. 꽃잎을 손바닥에 받아 봄이 내게 주는 귀한 선물처럼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꽃잎은 나비처럼 멋대로 날아가 엉뚱한 곳에 낙하한다. 어떤 꽃잎 하나가 내 옷깃에 날아와 사뿐히 내려앉는다. 나는 갑자기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봄이 내게 1급 훈장을 달아주는 듯하다.

나는 나무 아래 멈춰 서서 눈부시게 피어 있는 화사한 꽃들을 달고 있는 벚꽃나무를 쳐다본다. 무엇이 저렇게도 화려하고 찬란한 꽃들을 무더기로 피어나게 한 것일까. 암만 해도 무슨 힘이, 내가 모르는 손길이 있는 듯하다.

그 신비한 힘이 봄을 이 땅에 보내어 벌이는 엄청난 축제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나는 기분이 한껏 날아오를 듯하다. 나무에 하얀 불이라도 이는 듯 눈이 시리게 피어 있는 화사한 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절로 눈물이 솟아날 것만 같다.

눈부신 꽃잎들 사이로 보이는 파아란 하늘이 곱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 불어 꽃들이 흔들리고 꽃들이 날고 꽃들이 떨어지고 하는 사이 새삼 인생이 너무나 짧고 서럽다는 감정에 북받친다. 꽃잔치에 나는 까닭모를 서러움을 느낀다. 꽃들은 잠시 피었다가 다 지고 말 것이다.

나무 가지마다 피어난 꽃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진 꽃들. 봄이 가면 피어남도 떨어짐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꽃들의 자취. 사람도 저와 같아서 생겨났다가 끝내 죽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살았다가 그리고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꽃들의 축제는 아름답고 찬란하지만 그것은 한때의 일이다. 사람이 나고 죽는 것도 이 벚꽃 축제와 같아서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한때의 일이다. 땅에는 떨어진 꽃, 나무에는 떨어질 꽃. 대체 봄은 내게 무엇을 말하려고 이 엄청난 화사한 슬픔을 가득 안겨주는 것일까.

꽃은 피어남도 사라짐도 그저 한가지라는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피었다가 자연스럽게 진다. 아무래도 나는 이 꽃나무처럼 인생을 살지는 못할 듯하다. 어떤 범우주적인 인연으로 생명을 얻어 태어났지만 영문도 모르게 사라져가야 하는 까닭을 꽃나무에게 물어보고 싶다.

저 꽃나무, 풀과 새와 짐승과 물고기, 모든 생명들은 슬픔을 모르는 양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여 살다가 사라진다. 이 봄이 와서 꽃들을 피게 하더니 그리고 지게 하더니,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나는 진정으로 봄에게 묻고 싶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그리고 이 축제는 또 무엇인가 하고. 어이하여 봄은 이 땅에 꽃대궐을 만들어 놓고, 마음을 부풀게 해놓고, 모든 것을 데불고 가버리고 마는 것일까.

자연의 모든 생명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자기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한사코 모른 척한다. 그러다가 결국 죽는다. 인생이란 봄이 벌이는 한바탕 축제와도 같은 것인가. 나는 그 축제에 초대받은 유일한 손님인가. 사람의 나고 죽음이 벚꽃의 피어남이고 떨어짐인가.

어쩌면 알 것도 같다. 봄이 가면 꽃들이 지는 까닭을. 꽃들이 왜 아름다운가를. 그러나 나는 그것을 말로는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슬픔이 너무 크고 깊어서 내 눈물로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애써 감정을 추스리며 나는 꽃그늘 아래서 한동안 눈물을 감추고 서 있었다.

올해 맞이한 봄은 내 생애에서 몇 번째 봄인가. 인생에 몇 번째 봄이란 없다. 봄은 항상 첫 번째 봄이다. 그러기에 봄이 오면, 봄이 와서 저질러 놓은 축제 가운데서 나는 울고만 싶은 것이다. 떨어진 꽃들은 아름답다. 가는 봄에게 내 눈물을 주고 싶다. 내일은 비가 오리라 한다. 저 벚꽃들은 다 지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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