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69) - 탁지부 재정고문 브라운 해임 사건
조선, 부패로 망하다 (69) - 탁지부 재정고문 브라운 해임 사건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2.04.04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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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11월 13일에 탁지부 재정고문 영국인 브라운(1842∽1926)이 해임되고 후임에 러시아의 관리 알렉셰프(Alexeieff)가 임명되었다.

남양주 홍릉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
남양주 홍릉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

브라운은 북경 주차 영국 공사관의 참찬관과 해관, 세무사를 하였는데 영국의 한국 진출의 일환으로 1895년에 해관장(세관장)으로 부임했고 탁지부 재정 고문을 겸임했다. 영국 ‘데일리 메일’ 신문의 러일전쟁 종군기자 매켄지는 1920년에 발간한 『한국의 독립운동(Korea’s Fight for Freedom)』 책에서 탁지부 재정고문 브라운의 활동을 아래와 같이 적었다.

“청국의 세관에서 경험을 쌓은 브라운 씨는 영국 정부의 천거로 한국의 탁지부와 해관(세관) 책임자를 1895년에 맡았다. (중략) 국고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브라운 씨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심지어는 국왕도 자신의 사치가 제지당하고 있음을 알았다.

왕실의 사업계획은 지연되었으며 쓸데없는 낭비는 다른 좋은 목적을 위하여 전용되었다. 이를테면, 고종이 하고 싶은 명성황후의 기념궁 건립은 연기되고 나라의 영원한 이득을 위한 도로가 건설되었다.

이러자 자신의 수입이 제한되고 자신의 친척을 위한 한직(閑職)이 줄어든 사실을 발견한 관리들은 브라운을 몰아내려고 손을 잡았다.” (매켄지 지음·신복룡 역주, 한국의 독립운동, p 47)

비숍 여사도 서울의 변화를 이룬 공로자 브라운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서울은 여러 면에서 특히 남대문과 서대문 방향으로는 너무 변하여 옛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최소한 55피트(16.5M) 노폭의 도로 양쪽에는 돌로 된 깊숙한 통로와 돌의 후관으로 다리를 놓음으로써 콜레라의 근원이 되었던 지저분한 골목을 바꾸어 놓았다. 좁은 길이 넓혀지고 진흙 개울이 포장되었으며 도로는 더이상 쓰레기를 자유롭게 버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서울은 이제 극동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다. 서울 거리가 너무 바뀌어 1894년에 이 책을 쓰기 위해 사진을 찍어 두었던 대표적인 빈민촌의 모습이 쓸모없게 되었다.

주한 미국공사 알렌은 1896년 가을 이후 4개월은 그가 조선에 머문 지난 12년보다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 비상한 변화는 4개월 만에 이뤄졌다. 능력 있고 지각 있는 한성부 판윤 이채연과 해관 총세무사 브라운 덕분이다.” (비숍 지음 · 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p 448-457)

한편 고종이 영국인 재정고문을 러시아인으로 교체하자 영국이 무력시위에 나섰다. 박은식은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읽어보자.

“영국인 브라운이 재정고문으로 있었는데 러시아 공사가 우리 조정과 상의하여 러시아인 알렉셰프로 바꾸어 버렸다. 영국 영사가 강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러시아는 다시 경성에 한러은행을 설립하여 한국의 재정과 경제를 장악하고자 하니, 1897년 12월 27일에 영국이 동양함대 7척을 파견해 제물포에 정박시키고 영사가 장교 1명과 수병 10명을 데리고 서울에 들어왔다. 이에 우리 정부가 두려워 브라운을 해관 총 세무사에 임명하였다.

브라운의 해임은 우리 정부에 막대한 손해를 주었는데 그는 고문으로 재직하는 동안 법을 지키고 직분을 다하여 필요불가결한 지출 외에는 허락하지 않았고 1년 사이에 300만 원의 잉여금을 만들어 일본에 대한 부채를 갚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였지만, 궁정과 관청의 탐관오리들은 마음대로 비용을 쓰지 못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겨 그를 해임시키게 되었다.

그런데 러시아 고문은 임명되자마자 브라운과 전혀 반대로 궁중과 관청에서 마음대로 돈을 지출하게 하니 수개월이 못되어 탁지부의 금전이 바닥났다. 이러자 관직을 팔고 백성의 재물을 거둬들이는 등 탐학과 악정이 성행하게 되었다. 외국인 고문도 법을 지키고 직분을 다하는 자는 질시 속에 파면을 당하니 당시 당국의 부패 정도를 능히 알 수 있다.

(박은식 지음·김승일 옮김, 한국통사, p 2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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