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66) - 산중(山中)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66) - 산중(山中)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3.21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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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흰 구름 두웅실 하염없이 흘러가네 : 山中 / 규창 이건(선조의 손자)

기다리던 봄이 왔다. 언제 왔는지 소식도 없던 봄이 슬며시 다가오는가 싶더니만, 산중에 오솔길 가에도 파릇파릇 풀이 돋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제 키 자랑을 해댄다. 겨우 길을 걷기조차 했던 오솔길이 금방 풀밭이 되어 분간하기조차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만 길을 막아 버렸다고 투정이라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찾아온 파릇파릇 봄 산에는 초목도 많이 돋았는데, 나무꾼은 길이 좁아서 분간키도 어렵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山中(산중) / 규창 이건(선조의 손자)

봄 산에는 초목도 너무나도 많아서

나무꾼이 길 좁아 분간하기 어려운데

노을에 하얀 구름이 유유하게 흘러가네.

春山多草木 樵路細難分

춘산다초목 초로세난분

匹馬煙霞裡 猶疑上白雲

필마연하리 유의상백운

머리 위로 흰 구름 두웅실 하염없이 흘러가네(山中)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규창(葵窓) 이건(李健:1614~1662)으로 선조의 손자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파릇파릇 봄 산에는 초목도 하도 많아 돋았는데 / 나무꾼은 길이 좁아서 분간키도 어렵겠네 // 말과 같이 노을 속을 헤치면서 지나가노라니 / 머리 위로 흰 구름 두웅실 하염없이 흘러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산중에 있노라니]로 번역된다. 자연을 보고 음영했던 시작품이 대종을 이룬다. 깊은 산중에 들어가 울창한 숲과 훌쩍 커버린 나무와 풀을 보면서 시상을 일으켰다. 산중의 새소리와 벗 삼아 흥얼거리는 시상도 만나면서 자연은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젖는다. 우리 선현들은 이렇게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을 음영하며 살았다. 시인의 시상을 보면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종장인 결구에서 시적인 반전을 시도하여 자연을 힘차게 끌어당기는 한 모습을 볼 때마다 시상의 멋을 발견한다. 봄 산에는 초목도 하도 많아서 산에 가서 나무하는 나무꾼이 길이 좁아서 분간키 어렵다는 것을 잘 알면서 평범한 시상을 만지작거린다. 그렇지만 자연과의 합일을 유도해내기 위한 것임을 은근하게 살피게 된다. 화자의 시상은 자연에 귀일歸一하는 한 모습을 보면서 범상하지 않는 안목을 발견하곤 한다. 말을 타고 노을 속을 헤치며 지나노라니, 머리 위로 흰 구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는 시상이다. 머리 위로 흘러간 구름은 바람을 타고 다시 올 것이라는 귀일의 시상임도 시주머니에는 채워졌으리라.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봄 산 초목 많이 돋아 분간키도 어렵겠네, 노을 속을 지나가니 흰 구름만 하염없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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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규창(葵窓) 이건(李健:1614~1662)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다. 선조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 이공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로 좌참찬 증 영의정 윤승길의 딸로 알려진다.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8세에 소학을 배웠으며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을 공경할 줄 알았다.

【한자와 어구】

春山: 봄 산. 多: 많다. 草木: 풀과 나무. 樵路: 나무꾼 길. 나무꾼들이 비좁게 다니는 길. 細: 좁다. 難分: 분간하기가 어렵다. // 匹馬: 필마. 여기에선 필마와 같이. 煙霞裡: 노을 속을 지나다. 猶: 오히려. 疑: 의심하다. 上: 위로. 여기에선 머리 위로. 白雲: 흰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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