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63) -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2)
조선, 부패로 망하다 (63) -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2)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2.02.21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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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의 게으름은 수탈 탓

조선인의 게으름과 가난은 조선을 여행한 외국인의 글에 자주 등장한다.

명성황후 생가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 생가 (경기도 여주시)

석 자가 되는 긴 담뱃대를 항상 물고 다니는 조선인의 모습은 게으름의 상징이었다. 심지어 일본 ‘국민신문’ 기자 마쓰바라는 여행기 ‘정진여록(1896년)’에서 이렇게 적었다.

“천성이 게으른 것으로 유명한 조선인은 놀고먹기를 정말 좋아한다. (…)조선인들은 오늘만 있고 내일이 없다. (…) 저축할 생각도 없고 신분 상승하려는 관념은 더 더욱 없다. 그저 먹고, 자고, 죽는 운명을 갖고 있을 뿐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편, 이방인이 본 우리, 2009, p 250~251)

그런데 비숍 여사는 1894년 9월에 두만강 근처의 시베리아 한인촌을 방문하고는 조선인의 게으름은 천성이 아니라 위정자의 수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근으로부터 피난 온 조선인들은 자치권을 누리며 근면하며 청결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농부의 어슬렁대는 태도는 민첩한 행동으로 바뀌었고, 그곳에는 돈을 벌 기회가 많았다. 그들이 번 돈을 짜낼 양반도 관리도 없었으며, 재산에 대한 불안감보다도 신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많은 농부들이 부유했다.… 조선에서 나는 그들이 열등 민족이고 삶의 희망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프리모르스크에서 나는 나의 의견을 수정해야 할 이유들을 발견했다.” (비숍 지음·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2019, p 238~240)

한말 조선인들은 왜 게으르고 가난했나? 그 이유는 수탈 체계에 있었다.

비숍은 그녀의 저서 마지막 장(제37장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계층적 특권, 국가와 양반들의 수탈, 불의(不義), 불안정한 수입, 최악의 전통을 수행해온 정부, 책략에만 몰두하고 있는 공식적 약탈자들,… 널리 만연돼 두려움을 주는 미신이 이 나라를 무기력하고도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조선에서 겪은 첫인상이었다.

(...) 나는 땅을 경작하는 이들이 최종적인 수탈의 대상이라는 것을 거의 지겹게 반복했다.(…)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이다.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위 책, p 458~462)

# 여주의 양반들

1894년 4월 19일에 비숍은 경기도 여주에 도착했다. 이곳은 민왕후(1851∽1895, 1897년에 명성황후로 추존)가 태어난 고을이다.

그런데 비숍은 자신이 구경거리가 된 것에 불쾌하였다.

“거리는 지저분하고 쇠락해 있었다. 주민들 얼굴에는 가난과 나태 그리고 우울함이 널려 있었다. 관아는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관아 안에는 조선의 활력을 빨아먹는 기생충들이 우글거렸다. 나는 절을 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무례했다.

여주에는 ‘지체 높은 양반들이 많다’고 들었다. 단 700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의 현감이 높은 지위는 아닌 것 같다. 양반들은 그에게 반말을 했고, 자신의 부하처럼 명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당시는 민씨척족들이 조선을 휘둘렀으니 ‘여흥민씨’ 고을은 위세가 대단했으리라.

이윽고 비숍은 여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천양 마을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비숍은 여자들에게 붙잡혀서 서커스가 열린다는 커다란 기와집에 들어갔다.

“40여명의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아주 어려 보이는 주인마님은 인디안 보석을 걸치고 있었는데 예쁘고 피부가 고왔다. 나머지 여자들은 예의가 너무 없었다. 나의 모자를 벗겨 써보기도 하고 장갑을 끼어보며 깔깔댔다. 그들은 14개나 이어지는 방을 보여주었는데 마루는 야한 브뤼셀 제 카펫으로 덮여있었고, 벽에는 프랑스제 시계와 독일제 거울들이 천박하게 돈티를 내며 모든 방에 걸려있었다.

(...) 주인은 18세의 청년으로 조선의 가장 중요한 통치자의 장남으로 민왕후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는 우리를 환영하면서 예의 바르게 대접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외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었다. (...) 프랑스제 시계, 독일제 거울, 미국산 담배, 벨벳 의자 이런 것들이 젊은 멋쟁이들에게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은 조선인의 소박함을 타락시키고 하층민들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소비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비숍 지음·이인화 옮김,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살림출판사, 1994, p 109~113)

이처럼 비숍은 젊은 권력층들의 사치에 조선의 앞날을 절망적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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