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62) -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1)
조선, 부패로 망하다 (62) -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1)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2.02.14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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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지리학자 비숍(1831~1904) 여사가 발간한 책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한국(1882년)’, 매켄지의 ‘대한제국의 비극(1908년)’, 헐버트의 ‘대한제국 멸망사(1906년)’와 함께 조선 말기에 외국인이 저술한 4대 명저로 알려져 있다.

덕수궁 중명전
덕수궁 중명전

비숍의 책은 1898년 1월에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는데, 생존시에 11판이나 팔렸다. 비숍의 책은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도 실렸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영문 초판본을 선물할 정도로 유명하다.

비숍 여사는 1894년 2월부터 1897년 3월 사이에 네 차례에 걸쳐 조선을 방문했다. 조선에서 머무른 기간은 11개월 정도였다.

비숍이 서문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조선 여행은 몽골 인종의 특징에 관한 자신의 연구 계획의 일부였다. 그녀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처음 여행에서 조선은 내가 지금까지 여행해 본 나라 중에서 가장 흥미 없는 나라라는 인상이 들었다. 그러나 청일전쟁과 그 뒤 조선의 정치적 불안, 급속한 변화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들의 운명은 나로 하여금 조선에 대한 강렬한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또 러시아 정부 통치하의 시베리아에서 본 조선 사람들의 품성과 근면성은 장래에 이 민족에게 큰 가능성이 기대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후략).”

비숍 여사는 1894년 청일전쟁과 1895년 을미사변, 아관파천, 독립협회 활동, 경운궁 환궁 등 격동기에 조선에 지내면서 조선 사회를 정확하게 기록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이 책은 서장과 37장으로 돼 있는데, 제1장은 ‘조선의 첫인상’이다. 1894년 2월 23일에 비숍은 일본 나가사키를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했다. 이날 그녀는 부산 장날을 구경했다.

“장날에 붐비는 군중 속을 평화롭게 걸어갔다. 나는 부산이 처참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것이 조선 마을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점을 알았다. 좁고 더러운 거리에는 진흙을 발라 창문도 없이 울타리를 세운 오두막집, 밀짚 지붕, 그리고 깊은 처마, 마당으로부터 2피트(61cm) 높이의 굴뚝이 솟아있고 가장 바깥에는 고체와 액체의 폐기물이 담겨있는 불규칙한 개천이 있다.

더러운 개와, 반 나체(半裸)이거나 전라(全裸)인 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때가 많이 낀 어린애들이 두껍게 쌓인 먼지와 진흙 속에 뒹굴고, 심한 악취에도 아무렇지도 않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비숍은 인천 제물포에 도착했다. 제물포에서 비숍은 집과 관아를 보았다.

“조선 사람들의 집은 언덕 밑에 자리 잡고 있었고, 언덕 위에는 성공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언덕을 오르면 자투리땅마다 채소를 심은 토담집이 늘어서 있고 지저분한 길목에는 몸이 더러운 아이들이 떼지어 앉아 그들의 무기력한 아버지를 본받을 방법을 찾고 있었다.

언덕꼭대기에는 관아가 있다. 형벌의 방법은 관아의 벼슬아치들이 죄인을 잔인하게 채찍질하고 죽도록 때리는 것이다. 죄인들의 괴로운 부르짖음이 영국 선교관과 인접한 방까지 들려온다.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거의 모든 관아가 악의 소굴로 되고 있다.”(비숍 지음·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집문당, 2019, p13~25)

이윽고 비숍은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의 첫인상도 ‘불결’ 그 자체였다. 개천은 검게 썩은 물이 악취를 풍기며 흐르고 있고, 하층 계급 여인들은 악취 나는 물에서 옷을 빨고 있었다. 악취 나는 하수도는 반나체의 어린애들과 피부병 걸린 채 눈이 반쯤은 감긴 큰 개들의 놀이터였다.

이처럼 63세 영국 여자의 눈으로 본 조선은 ‘불결’과 ‘야만’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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