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나라'
‘이 놈의 나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22.01.1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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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 나라꼴이 엉망으로 돌아간다 싶을 때면 가끔 ‘이 놈의 나라’ 하고 한탄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런 말이 쑥 들어가고 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 그새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

작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에서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한국을 기존 개발도상국(후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했다. 어느 한 나라를 선진국가로 격상시킨 일은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이런 기관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으로 올라선 것이다. 5천만 명이 환호할 기적 같은 일이다. 대체 무엇이 어쨌다고 한국이 선진국가로 올라서게 된 것인가.

연간 수출입액이 1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10위 권의 무역대국이 되어서인가. 물론 그런 경제력도 당연히 포함되었겠지만 나는 지구촌을 들썩이게 하는 한류도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러나 가장 큰 요인은 마땅히 국민의 도덕률이 높아진 점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인만 한국을 모른다고 타박한다. 한국의 위상이 세계 선진국가 반열에 올라선 것을 한국인만 모르고 또 알아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인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아직도 갈증, 허기를 느끼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더 멀리 달려가려는 한국, 한국인. 하여튼 스스로를 비하하던 옛날 한국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튜브를 보면 외국인들이 올린 수많은 영상에서 카페에 노트북, 가방, 휴대폰을 놔두고 밖에 나갔다 와도 멀쩡히 그대로 있다고 놀라워한다. 버스에서 지갑을 떨어뜨리고 나와도 쉽게 되찾을 수 있다. 외국인이 길을 물으면 아예 목적지까지 동행하며 안내를 해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의 도덕률이 높아진 데서 그 이유를 찾아야만 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게 다 CCTV 때문이라 한다. 카메라가 어디서나 국민의 움직임을 죄다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남의 물건을 가져가면 범인으로 몰리는데 뭣하러 슬쩍하겠느냐는 것이다. 정말 그것 때문일까.

서울에 사는 내 동생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그는 고혈압 약을 병원에 가서 정기적으로 지어다 복용한다. 한데 고혈압 약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서 지난 몇 달 동안은 약을 줄일 생각으로 이틀마다 한 번씩 복용했다. 제 멋대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랬더니 전화가 왔다. “선생님은 고혈압 약을 제대로 드시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는 깜짝 놀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란 데서 동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석 달마다 고혈압 약을 타가는 데 이참에는 여섯 달이 되어도 처방을 받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물었다.

공적 기관이 일 개인의 건강을 보살펴서 상시 복용약을 제대로 들지 않는다며 깨우쳐 준 것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을 국가가 하고 있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가 생활의 저변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번엔 내가 겪은 일. 나는 바로 며칠 전 내 방의 방문 손잡이가 못쓰게 되어 손잡이를 사려고 인터넷을 뒤져보았으나 수백 가지 중에 어느 것이 우리 집 방문 손잡이와 같은 것인지 식별할 수가 없었다.

하나가 망가졌지만 집에 있는 다른 네 개의 손잡이와 동일한 것을 구하고 싶어서 생각다 못해 아파트 건설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아파트는 입주한 지 4년이 다 된 터라 물어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 같긴 했지만 혹시라도 손잡이의 상품명이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건설회사의 담당자는 부서진 손잡이의 사진과 주소를 휴대폰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며칠 후 집에 거짓말처럼 은빛으로 빛나는 새 손잡이가 배달되어 왔다. 어안이 벙벙했다. AS기간도 벌써 전에 지난 아파트의 방문 손잡이를 새것으로 공짜로 보내주다니.

이런 사소한 일들을 가지고 선진국임을 증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가 천지개벽하듯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이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반듯해졌고, 도덕률이 높아졌고, 배려심이 깊어졌고, ‘국가가 국민을 돌보는 나라’가 되었다.

다시는 사회가 언짢은 일을 겪는다 하더라도 ‘이 놈의 나라’라고 하지 말라. 지난 반세기 동안 피땀 흘려서 이렇게 만들어 놓은 부모, 조부모 세대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라. 다만 한 가지, 아직도 4류로 뒤처져 있는 엉망진창인 정치만 1류로 올라선다면 이 나라는 비길 데 없이 완벽한 선진국가라 할것이다. 그러면 우리 스스로도 실감하는 선진국 국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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