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말
전라도 말
  • 문틈 시인
  • 승인 2022.01.1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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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말에는 귀한 말들이 많다. ‘잘 가그라, 잉’ 말 끝에 ‘잉’ 하고 덧붙이는 이 한 마디는 값으로 친다면 만 량에 값한다 할 것이다. 부디 잘 가라, 한 걸음마다 조심해서 가라, 그런 뜻도 담겨 있지만 보내는 이의 마음 바닥에 있는 서운하고 섭섭하고, 그리고 다시 만나고 싶다는 다짐을 붙여서 하는 여운이 있는 말이다.

떠나보내는 이에게도, 떠나는 이에게도 이 말처럼 마음을 붙잡는 정겨운 말이 또 있을까싶다. ‘잉’ 한 마디 말에는 다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살이의 안타까움이 들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잘 가그라, 잉’ 내가 어머니를 뵙고 집을 떠날 때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이기도 한데 ‘잉’이란 말은 가는 내내, 내 집에 당도하기까지 나의 걸음에 따라 붙어서 온다.

물론 ‘잉’이라는 말이 왕래를 뜻하는 말에만 쓰는 것은 아니다. 대개 부탁이나 당부, 권유, 다짐하는 말에 붙여 잘 쓴다. 생각할수록 참 보석 같은 말이다. ‘잉’을 하나의 예로 들어서 그렇다는 것이고 전라도 말에는 이런 정겨운 말들이 무수히 많고도 많다. 전라도는 아름다운 말의 천국이다.

전라도 말은 웅숭깊은 말도 말이지만 말투와 억양은 또 얼마나 정겨운지 모른다. 나는 어릴 적 길을 질, 기름을 지름, 엄마를 어무이, 할아버지를 한아부이, 샘을 새암, 이런 말들을 쓰며 살았다. 그랬기에 서울말을 쓰면서 너무 이질감 같은 것을 느껴서 오랜 기간 되게 불편했다.

무엇인가 귀중한 것을 버리고 사는 느낌이랄까. 낯선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소외, 격리, 그런 감정이 떠나질 않았다. 서울에 오래 살았을 적엔 고향의 말을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다시 희미해진 고향말을 되살려 쓰려고 하는 중이다. 그래서 어머니집에서 실컷 듣는 전라도 말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전라도 말은 어머니와 고향이 가르쳐준 영혼의 말이다. 이것은 나의 지론이다.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고향 말을 잊지 않는다면 그는 고향의 품으로부터 완전히 떠난 사람이 아니다. 고향의 말이 그를 안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말을 잊어버린 사람은 고향을 잃어버린 것과 다름이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김영랑의 시에 나오는 ‘오매, 단풍들겄네’는 그 말과 억양으로 충분히 전라도 말의 정서를 담뿍 담고 있다. 다른 말로는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싯귀다. 나는 때때로 우기고 싶다. 전라도 말은 시라고 말이다. 전라도 말 하나 하나가 시어(詩語)다.

‘아따, 살라면 얼릉 사쇼. 어쩌꾸름 이것저것 만져만 보고 그냥 거시기할라요.’ 저자에서 흔히 듣는 말인데도 내게는 뭐랄까, 영혼이 힐링되는 것 같은 말이다. 말에 치유 기능이 있다면 전라도 말에는 필시 무슨 약 성분 같은 것이 들어 있으리라.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서 만일 저 세상으로 간다면 그곳에서 쓰는 말은 전라도 사람은 분명 전라도 말로 할 것이다. 이승의 말이면서 저승의 말. 그 말로 대화를 해야 영혼과 마음이 통할 것이니 말이다.

이런 값진 전라도 말이 소위 표준말이라는 서울말의 습격을 받아서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있거나 있다 해도 고리짝 같은 것에 담겨서 녹 쓸어 별로 쓸모를 찾지 못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라도의 정체성은 전라도 사람들이 쓰는 말에 있다. 나는 그 말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영국은 인구가 6천만 명 정도의 섬나라인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4개국으로 구성된 연합국가체제다. 각 지역별로 그 지역에서 쓰는 말이 다르다. 물론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4개 지역별로 공통어로 쓰는 지역어가 있다. 예컨대 웨일스 지방 사람들의 상당수는 웨일스어를 주로 쓴다. 영어와 많이 다른 언어다.

1977년 미국 나사가 우주로 발사한 보이저1호에는 지구의 모습을 담아 보낸 CD가 있었는데 웨일스어도 실려 있다. ‘현재에도 그 이후에도, 항상 건강하세요"(Iechyd da i chwi yn awr ac yn oesoedd)라는 웨일스어다. 영어와 판연히 다르다.

전라도 말은 다른 지역과 통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표준어를 강요해서 전라도 말을 내치는 것은 나는 반대다. 지역어를 말도 안되는 사투리 운운하며 내칠 것이 아니라 보존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 특히 전라도 말은 아끼고 사랑해야 할 보물이다. 전라도 말은 전라도의 전통 특산품이다. 전라도 말이 더 사라지기 전에 복원해서 서로 깊은 정감이 통하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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