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나그네처럼
세월은 나그네처럼
  • 문틈 시인
  • 승인 2021.12.3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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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은 노래한다. ‘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며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다.’ 세월을 방랑객으로 보고 읊었다. 나그네인 한해가 지난 365일 묵었던 여관을 떠나 훠이, 훠이, 언덕 너머로 가고 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나그네가 떠나자 새해라는 나그네가 여관을 찾아온다. 새 손님이다. 천지간에 오가는 세월은 나그네처럼 왔다가 가고 또 오고, 마치 파도의 물굽이처럼 그렇게 잇대어 오고감에 끊임이 없다. 더불어 말하자면 세월만이 나그네는 아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는 ‘나는 구름처럼 방랑하였노라’고 그의 삶 전체를 방랑으로 보고 노래했다. 그의 삶을 나그네 살이 방랑객으로 비유한 것이다.

시인 묵객 중에는 드물지만 방랑을 하며 일생을 보낸 사람들도 있다.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 시인 바쇼는 방랑의 시인이라 부른다. 막부시대의 이 걸출한 시인은 은둔형 나그네다. 일본 전역을 말 그대로 바람 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삿갓을 쓰고 다니면서 김삿갓처럼 처처에 시를 남겼다.

그의 여행기 ‘오쿠로 가는 작은 길’에는 걸음걸음마다 인생의 쓸쓸함, 덧없음 같은 것들이 향토색 짙은 문장의 행간에 스며 있다. 방랑의 노래라고 할까. 몇 번이고 읽고 싶어지는 여행기다.

바쇼는 여행기에서 ‘해와 달은 영원한 과객이고, 오가는 세월 또한 나그네이다’ 라고 썼다. 이 한 문장이 시인의 방랑에 합쳐져 깊은 울림을 준다. 이 문장은 사실 앞에 나온 이백의 싯귀를 변주한 것이다. 동양고전을 공부했던 바쇼가 이백의 시를 좀 더 가까이 불러와 읽어주는 구절인 셈이다.

이 연장선에서 세월이 나그네라면 새해는 새로 오는 나그네일 터다. 우리에게 오는 새 손님. 방랑객이 어찌 세월만이겠는가. 그 세월을 맞이하고 보내는 인간 또한 과객이요 나그네라 해야 맞을 듯하다. 천지간에 나그네 아닌 것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 한 나그네를 보내고 이제 2022년이라는 새로운 나그네를 맞이한다. 지난 한해는 가택연금이나 마찬가지 상태로 출입을 자유로이 못하고 코로나에 구금당하다시피한 채 살았다. 가끔 병원행, 산책 같은 바깥출입을 안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 마주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기피했다.

사람이 사람을 애써 멀리하다니, 내 일생 초유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이한 시기를 살았다. 그러기에 새해는 이 땅에 기쁜 소식을 가져올 새 손님이 오기를 고대한다. 새해가 와서 묵은 해가 헝클어 놓은 잡다한 세간을 깨끗이 정리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제발 인생을 정처없는 나그네처럼 살지는 못하겠지만 며칠만이라도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지인들과 먹고 싶다. 이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이며 행복한 것인지를 코로나가 가르쳐 주었다. 코로나는 세계가 한 그물의 그물코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 사람이 전 인류와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케 해주었다.

새 손님으로 오는 새해는 어떤 모습으로 올 것인가. 나는 그동안 가끔 엉뚱한 몽상을 했다. 코로나로 인류에게 재앙을 안겨준 자연이 이대로 인류를 파멸로 이끌어가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자연은 인간을 멸절시키면 자연도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어서다.

치명율이 높은 델타변이보다 더 전파력이 강력한 오미크론 변이가 불쑥 나타난 것은 어찌 보면 하나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자연은 온순한 바이러스 변이가 빨리 더 넓게 퍼져 인간 생명을 노리는 나쁜 바이러스를 몰아낼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미크론은 델타변이에 비해 치명율이 훨씬 덜하다. 그러나 전파력은 몇 배나 쎄다.

인간에게 중심을 잡는 이성이 있듯이 자연에게도 이성 같은 것이 있어서 자연계를 바로 이끌어가려는 조짐이 아닐까. 코로나 바이러스에 무슨 나쁘고 좋은 바이러스가 있을까마는 별의별 기대를 새로 오는 나그네 2022년에 걸어보는 것이다.

몇 년에 걸친 여행을 마친 바쇼는 ‘인위적이고 주관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천지만물의 조화에 따라 살 것’을 설파했다. 설령 코로나가 지배하는 새해가 될지라도 우리는 그 틈에서 조화를 찾아 지혜롭게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한다. 바쇼는 노래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새해를 열렬히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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