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
잠이 오지 않는 밤
  • 문틈 시인
  • 승인 2021.12.1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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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잠을 못 이룬다. 어떤 날 밤은 온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기도 한다. 잠을 잘 자는 사람은 불면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왜 잠이 오지 않을까.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가. 나는 밤새 내 안으로 들어가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모르긴 하지만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와서 이렇다 할 일을 하지 못한 데서 나온 회한 같은 것인가. 아닐 것이다. 내 나이쯤 되면 세상일이란 것이 대개 내 뜻대로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세상 되어가는 대로 나를 맡기고 사는 것을 순리로 알고 지내는 것이다. 설사 억지로 밀어붙여 어떤 일이 성취되었다고 해도 나중에는 그것이 그저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이 흐르듯 자연의 이법대로 사는 것이 삶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마음 저 밑바닥에는 깔려 있는 불안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 불안을 없애려고 무척 애를 쓴다. 불안을 없애야 잠이 올 것 같아서다. 두 다리 뻗고 편히 자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없을 것만 같다.

불안을 몰아내려고 밤새워 전전반측하며 생각의 끝에 이르러 마침내 그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언젠가는 죽게끔 되어 있다. 나는 유독 죽음에 대해서 공포와 두려움을 갖고 있다. 자연은 왜 인간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고 또 죽게 하는가. 이 무슨 심술궂은 일이란 말인가.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파인만은 ‘인간은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 사람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오면서 가깝게 지낸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약골인 나는 살아 있는데 나보다 훨씬 건강하던 그들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해야 할 것인지.

나는 밤의 한가운데서 내 곁을 떠나간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함께 한 인연들을 짚어보았다. 참 좋은 사람들이었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곁에는 이제 속을 털어놓을 친구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몹시 슬프다.

절친한 친구가 한 사람 남아 있긴 한데 6개월이 넘도록 앓아누워 있다. 꼼짝 않고 누워 있기만 하는 통에 몸무게가 크게 줄고 그 친구 아내의 말에 따르면 ‘뼈에다 가죽을 입힌’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집에 누워 있다는 친구를 코로나 때문에 문병하러 가지도 못한다. 친구 쪽에서도 면회 사절이다. 최근엔 전화 통화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그 놈의 파킨슨병이라던가, 뭐라던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에서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 바로 얼마 전에도 옛날에 직장 일로 자주 접촉했던 미국에 사는 교수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메일로 조의를 표하는 것뿐이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는 카드를 보내며 우의를 나누었는데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 지인들의 타게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인생무상을 절감한다. 이를 악물고 버둥대며 살아온 날들이 한낱 꿈인가 싶기도 하다. 한 인간이 태어나 살려고 몸부림치다가 세상을 떠나는 이 기묘한 드라마가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생전에 만나서 담소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 하고 안부를 묻던 그 장면들이 먼 날의 기억으로 물러가 버렸다. 불러도 소리쳐도 오지 않는 그리운 날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나를 위로하고 달랠 대책이 없다. 잠은 점점 달아난다. 이 문제, 공포와 두려움을 해결할 길이 없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 ‘진시황제도 가고 나폴레옹도 가고 이제 내 차례인가 보구나’ 하고 탄식을 한 바 있다. 죽음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마는 이 어찌할 수 없는 여정을 사람들은 어디메 대단한 것이 있는 것처럼 행군한다.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자기는 안 죽을 듯이 산다.

지금 내가 잠을 못이루며 안타까워하는 불안의 실체를 나는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하는데 머리로는 승낙하지만 가슴으로는 밀어낸다. 밖에선 밤바람에 낙엽들이 길바닥을 이리저리 쏠려 다니고 나는 답이 없는 불안에 붙들려 밤을 새고 말았다. ‘살아 있으니 살아야지’, 어머니의 말씀에 기대어 인간의 삶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갑자기 나는 자연이, 우주가, 바로 나로부터 비롯하고 나로 인하여 종말이 온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삶에는 분명 그보다 더한 숭고한, 도달할 길이 없는 무슨 장엄한 뜻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무한한 우주가 밤마다 나를 향해 찬란히 빛을 내뿜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잠을 이루지 못 이루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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