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오월' 가슴에 묻고 전두환 숨진 날 5·18 유공자도 목숨 끊다
미완의 '오월' 가슴에 묻고 전두환 숨진 날 5·18 유공자도 목숨 끊다
  • 박병모 기자
  • 승인 2021.11.24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공자 이광영씨…계엄군 총탄 맞고 하반신 마비
40년간 하루 6번 진통제 주사로 버티다 그만...

1980년 '5월 광주' 학살 책임자인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숨진 날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계엄군의 총탄에 하반신이 마비돼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 5ㆍ18 유공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고(故) 이광영씨
이광영씨 생전 모습

23일 생을 마감한 고 이광영씨(68)가 주인공이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총상을 입고 40년간 고통과 통증 속에 살다갔다.
그의 유서에는 '5·18에 대한 원한, 서운함이 오롯이 담겨있다.
"통증이 심해져서 힘들고 괴롭다. 5·18에 대한 원한, 서운함을 모두 잊겠다. 아버지 품으로 가겠다. 가족에게 고맙다"는 유서 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애석하게도 이날 오후 4시쯤 강진군 군동면 한 저수지에서 물에 빠져 숨진 채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22일 오후 4시쯤 자택에 유서를 남기고 떠나 가족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같은날 오후 11시15분께 사망 장소와 5㎞ 떨어진 지점에 있는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경찰 조사결과 타살 혐의가 없는 것으로 보고 사망 원인을 자살(익사)로 사건을 종결 했다.

고(故) 이광영씨
고(故) 이광영씨

그는 같은날 전북 익산에 있는 거주지에서 고향인 강진 군동면 한 저수지까지 170여㎞를 직접 운전했고 사망 장소에 도착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5·18 당시 부상당한 시민군을 돕다 척추관통상을 입은 이씨는 수십년간 통증이 심각해 하루에도 6번씩 통증 완화 주사를 맞았다.

이씨는 1980년 5월 당시 군복무를 마치고 조계종 한 사찰의 승려로 생활했다. 
그는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광주를 방문했다가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뒤 시위대와 환자 이송에 뛰어 들었다. 
그런 이씨는 광주 구시청 사거리에서 백운동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계엄군이 쏜 총에 척추를 맞아 안타깝게도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후 이씨는 배우자와 함께 학교 부식을 납품하는 일을 하며 주로 운전을 도맡았고 만화 가게, 치킨집을 운영하는 등 생계를 유지해왔다.
통증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견딜수 없었던 이씨는 10여년 전 광주를 떠나 강원도 태백에 있는 산속에서 생활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전북 익산에 있는 요양지로 옮겼다. 이씨는 평소 우울증 증세 등 지병은 없었고 가족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게 주변 얘기다. 

이씨와 40년지기인 한 친구는 "80년 당시 승려 신분으로 전두환 일당의 학살을 목도하고 부상을 당한 시민군들을 병원으로 후송하는 활동을 하다 본인도 척추 관통상을 입었고 고생 끝에 결국 생을 마감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씨는 1988년 국회 광주 특위 청문회와 1995년 검찰 조사, 2019년 5월13일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혐의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했었다.
재판에서 그는 헬기 사격으로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여학생을 구조해 적십자병원으로 이송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