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49) - 개에게도 벼슬을 팔다.
조선, 부패로 망하다 (49) - 개에게도 벼슬을 팔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1.11.01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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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에 이르러 민씨 척족 실세 민영준이 정권을 장악하자 매관매직은 더 심해졌다.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 근정전

좋은 자리는 물론 참봉·도사·감역 같은 9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최하위 벼슬도 돈을 받고 팔았다.

민영준은 매달 5-6 차례 이조와 병조의 인사담당자를 불러 회의를 열고 벼슬자리를 팔도록 지시했다.

심지어 개에게도 돈을 받고 벼슬을 내리는 웃지 못할 일도 해프닝도 생겼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윤효정은 ‘풍운한말비사’에서 이를 기록하고 있다.

먼저 1910년 8월 29일에 조선이 망하자 전라도 구례에서 아편을 먹고 자결한 매천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이다.

“충청도의 연해 지방에 강씨 집이 있었다. 그 집은 한 부인이 과부로 늙으며, 재산이 조금 넉넉하였으나 다른 자녀는 없고 개 한 마리만 키우고 있을 따름이었다. 개 이름을 복구(福狗)라 불렀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복구’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남자 이름으로 생각하여 마침내 강복구란 이름으로 감역 자리를 강제로 팔았다. 그 값을 받기 위해 사람이 찾아오자 과부는 어처구니 없어 하며 “복구를 보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큰소리로 복구를 부르니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나타났다. 이러자 손님을 한바탕 크게 웃으며 가버렸다. 이후 충청도 지방에는 구감역이란 말이 생겼다. 다른 경우도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황현 지음 · 임형택 외 옮김, 역주 매천야록 상, p 280-281)

아울러 구한말에 활동한 문신이자 애국지사인 윤효정(1858-1939)의 ‘풍운한말 비사’에도 개 감역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라도 보성에 이씨 성을 가진 재산이 많은 한 과부가 개 한 마리와 살고 있었다. 그 개의 발이 노란색이어서 ‘황발이’라고 불렀다. 동네 사람들도 그 집을 말할 때는 아무개 과부댁이라고 하지 않고 ‘황발이네 집’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과부집이 운수가 대통했는지, 황발이 개에게 나라에서 선공감(繕工監) 감역관(監役官)이란 관직을 내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황발이 개가 건축이나 토목 공사를 관리하는 종 9품 공사감독관에 임명된 것이다.

당시는 한창 돈 주고 벼슬을 사고팔아 너도나도 벼락감투를 뒤집어쓸 때였다. 어떤 거간꾼이 황발이를 부자 과부집 주인의 이름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매관매직을 본업 삼던 관료에게 소개하여 선공감의 최하위직 감역관 벼슬을 내리게 하고, 문서와 장부를 들고 황발이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거간꾼이 그 집에 가보니 황발이는 그 집 개 이름 아닌가?

한참동안 난감한 표정을 짓던 거간꾼은 어쨌거나 감역관 벼슬을 시킨 대가로 상납금 5,000냥과 중도금 500냥을 황발이 이름으로 바쳐야 한다고 과부에게 말했다. 이러자 과부는 한술 더 떠서 웃음 띤 얼굴로 차분히 말하면서 돈 5,500냥을 내주었다.

“덕망있으신 임금님이 계셔서 하찮은 가축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니 제가 감역관 벼슬을 한 것보다 더 큰 영광입니다.”

이후 과부는 개를‘황발이’라 부르지 않고 정중히 ‘황감역 나으리’라고 불렀다. 동네 사람들도 과부집을 ‘황감역 집’이라고 부르며 과부가 그 집 개에게 대신 벼슬을 시킨 모양이라며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곤 했다. 이렇듯 매관매직이 개에게까지 미쳤으니 참으로 웃지 못할 기막힌 일이다. (조윤민 지음, 두 얼굴의 조선사, 글항아리, 2016, p 183-185)

이렇듯 고종 시대는 개에게도 돈을 받고 벼슬을 파는 일이 다반사였다. 매관매직이 풍습인 사회였다. 이랬으니 수탈당한 백성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1892년과 1893년에는 삼례 · 보은 집회등 동학농민들의 최제우 교조 신원운동이 일어났고, 1894년 1월 전봉준이 이끄는 고부농민봉기를 시발점으로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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