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6) - 상춘(傷春)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6) - 상춘(傷春)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10.25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송이 꽃이라도 두우의 시름이 더해만 있다오 : 傷春 / 총계 정지승

봄 날씨가 좋다보면 마음이 들뜬다. 상쾌한 바람이며, 나부끼는 벚꽃이며, 파릇파릇한 새싹들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싱그러운 봄은 여심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이를 상춘이라고 했고 小玉花는 ‘送別’에서 ‘莫學王孫去不歸 가고 오지 않는 왕손일랑 배우지 마소.’라고 했다. 또한 어린 단종은 두우의 시름을 말했는지도 모른다. 강의 섬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고, 한 줌 바람에 목란주만 출렁거리고 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傷春(상춘) / 총계 정지승

풀잎에는 왕손의 맺힌 한이 깃들고

꽃에서는 두우의 시름만이 더하는데

강섬에 목란주들이 출렁이고 있구나.

草入王孫恨 花添杜宇愁

초입왕손한 화첨두우수

汀洲人不見 風動木蘭舟

정주인불견 풍동목란주

한 송이 꽃이라도 두우의 시름이 더해만 있다오(傷春)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총계(叢桂) 정지승(鄭之升:1550~1589)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한 풀잎이라도 왕손의 한 많음이 깃들어 있고 / 한 송이 꽃일지라도 두우의 시름이 더해만 있다오 // 강의 섬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고 / 한 줌 바람에 목란주만 출렁거리고 있다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봄에 마음이 들뜸 // 봄에 마음이 상함]으로 번역된다. 봄이 되면 마음이 심란해 진다. 누구에겐가 들뜬 마음으로 전하면서 그 심정을 전하고 싶다. 움츠렸던 어깨를 쭈욱 펴면서 봄 동산으로 나들이라고 나가고 싶다. 저 만큼 성큼성큼 다가서는 봄에 손등이라도 가만히 대고 싶다. 이런 것들이 상춘傷春이겠다. 시인은 봄이 오는 자연의 소리를 왕손과 두우의 선물이자 한恨은 아닐까하며 생각했겠다. 풀잎 하나에도 왕손의 깊은 한이 깃들어 있지 아니한 것이 없고, 한 송이 꽃에도 두우의 시름이 더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한恨에 찬 한 줌 시상을 펼쳐 보이고 있다. 화자는 종장에서 대반전을 시도하기 위해 다소 엉뚱한 한 마디를 내뱉고 만다. 강가의 섬에는 상춘을 맞이할 사람을 볼 수 없고, 바람에 목란주만 출렁인다는 시상이 그것이다. 왕손은 왕의 자손이나 귀한 사람을 뜻하겠지만, 전제군주정치하에서 사람은 물론 모든 자연까지도 왕의 손길에서 벗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생각과 연관을 지어야 될 것 같다. 꾀꼬리의 한도 마찬 가지다. 목란주는 보통 작은 거룻배를 가르칠 때 쓰인 시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왕손 한이 깃들었고 두우 시름 더한다오, 사람 얼굴 볼 수 없고, 목란배만 흔들흔들’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작가는 총계(叢桂) 정지승(鄭之升:1550~1589)이다. 구수훈의 <이순록>에는 그를 이달, 최경창과 함께 삼당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모두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나 출몰이 분명치 않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뛰어난 시재를 가지고도 큰 명성을 얻지 못한 채 요절했다고 전한다.

【한자와 어구】

草: 풀. 入: 깃들다. 王孫: 매미처럼 생겼는데 울음 소리가 쟁(箏)같다함. 恨: 한. 花: 꽃. 添: 다하다. 杜宇소쩍새, 피나게 운다. 愁: 시름. 근심. // 汀洲: 강의 섬. 人不見: 사랑을 볼 수 없다. 동빈구조이나 평측 때문에 도치된 문장임. 風: 바람. 動: 움직이다. 불다. 木蘭舟: 목련으로 만든 배, 흔히 ‘배’로 쓰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