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게임
아파트 게임
  • 문틈 시인
  • 승인 2021.10.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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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팔자 양도차익이 생겼다. 이 양도차익의 일부를 집에 월세로 살았던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집에서 월세를 살았던 사람이 이 사연을 세상에 공개해서 알려진 이야기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속으로 뜨끔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 생전 나는 이사를 열 번 했는데 딱 한 번 전세를 안고 집을 매입한 적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그 집을 팔았을 때 기천 만원의 양도차익을 얻었다. 내게는 그 양도차익이 더 큰 집 마련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양도차익의 일부를 나누어 준 그 착한 미국 사람처럼 생각을 해보니 내가 산 아파트는 3년간 전세를 살았던 사람의 돈을 무이자로 빌려서 집을 매입한 셈이다. 물론 집을 살 때 차입한 은행돈의 원리금, 거래세, 그리고 해마다 낸 재산세 등 집과 관련하여 돈이 들기는 했지만 세입자의 전셋돈이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차익의 일부를 나누어 줄 생각을 하지 못했고, 하지도 않았다. 세를 안고 집을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알다시피 나는 최근 집을 팔았습니다. 그동안 당신이 주는 월세로 다달이 내야 하는 집 담보대출금, 이자, 세금, 보험료를 상계해 왔습니다. 당신이 지불한 임대료 중 담보대출 원리금에 대한 부분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이 돈은 당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런 좋은 집을 당신과 함께 공유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집주인으로부터 뜻밖의 돈을 받은 전 세입자는 “그 집 월세는 공정했고, 그 집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며 “집주인의 친절한 행동에 감동했다”고 했다. 나는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아마도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집값이 날마다 오르고 있어서다.

게다가 자기 집을 파는 사람은 비슷한, 혹은 더 큰 규모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집을 팔아 딴 데 쓰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개는 더 좋은 집, 더 미래가치가 있는 집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명백히 부동산이지만 사실상 화폐나 다름없이 ‘유통’된다. 언제든지 화폐로 바꿀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는 첫째가는 재산증식을 위한 투자상품이기도 하다. 거주 개념은 그 뒤다. 작년에 8억을 주고 산 아파트가 올해 16억이 되는 일은 다반사다. 그러니 집에 세든 사람에게 집 팔아 이익이 났다고 나누어준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어려운 일이다.

집 판 돈에 오히려 돈을 더 보태 더 큰 ‘투자상품’(아파트)을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이런 판에 설령 자기 집을 두 배가 오른 값으로 팔았더라도 착한 미국인처럼 세입자에게 선뜻 돈을 떼어줄 수 있을까. 투자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 주식투자에서 얻은 이익을 증권사 매니저에게 나누어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여기서 잠깐, 거꾸로 값이 싼 집으로 이사를 간다면 생긴 차익금으로 세입자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집주인은 그 차익으로 자식 결혼도 시켜야 하고, 쓸 일이 너무 많다. 이 경우에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에서도 아주 드문 사례여서 미담으로 언론에 알려진 것일 게다. 사람들은 지금 아파트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벌개진다. 속된 말로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 된 아파트 시장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속이 터진다. 회사 동료가 영끌을 해서 구입한 아파트가 2년만에 수 억원을 벌었다는데 누군들 마음이 편할 리가 없을 터다. 그야말로 아파트 시장은 아수라장이다.

정부가 별의별 대책을 내놓아도 오르기만 한다. 급기야 은행대출까지 틀어막았지만 소용이 없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박탈감, 좌절감을 안겨주는 아파트 게임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줄다리기에서 진 루저가 되고 말 것인가. 데스게임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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