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죽음 부른 현장실습…홀로 잠수작업 투입된 고교생 참변
또 죽음 부른 현장실습…홀로 잠수작업 투입된 고교생 참변
  • 이길연 기자
  • 승인 2021.10.08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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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자격증도 없는데…여수서 특성화고교생 요트 밑 따개비 떼다 숨져
2인 1조 매뉴얼조차 안지켜지고 업체 안전관리자는 선박 위에 머물러
끊이지 않는 사고에 정부 안전대책 허사…특성화고노조 진상규명 촉구

안전수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격이나 기술도 없는 어린 10대 직업계고 고교생이 또 다시 일터에서 현장실습 도중 숨졌다.

7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 앞에서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이 여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7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 앞에서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이 여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청소년들을 위한 안전한 현장실습을 만들겠다는 정부와 교육당국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7일 여수해경에 따르면 전날 오전 10시 40분께 여수시 웅천친수공원 요트정박장 해상에서 특성화고 3학년인 A(18)군이 현장 실습으로 잠수작업을 하다 실종됐다. A군은 공원에 상주하는 해양레저업체 관계자의 신고로 수중 수색에 나선 해경에 의해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A군은 여수지역 특성화고 학생으로 지난 9월부터 요트 임대업체인 B업체에 현장실습생으로 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군은 요트 청소 등 전반적 관리 업무에 투입됐었고 사고 당일에는 요트선박 바닥에 붙어있는 해조류·따개비를 제거하기 위해 잠수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잠수 작업에는 A군 혼자 투입됐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업체측 안전 관리자는 A군 작업 당시 선박 위에 머물러 있었다는 게 경찰 조사 결과다.

잠수 관련 자격증도 보유하지 않은 10대 고교생이 홀로 깊은 바다에 투입돼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경찰에서 안전관리자는 “A군이 작업을 하던 중 잠수장비가 헐거워 다시 결착하려고 공기통을 풀었으나 웨이트벨트를 풀지 못해 수중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고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545조·스쿠버 잠수작업 시 조치)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스쿠버 잠수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잠수작업자 2명을 1조로 하여 잠수작업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적혀있다.

진보당도 “현행 근로기준법상 ‘잠수작업’은 18세 미만인 자가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용금지직종’으로 분류되어 있다”면서 “만약 사망 학생의 연령이 이에 해당한다면 위법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안전수칙 매뉴얼 준수 여부를 비롯, 안전 교육 및 학교와 업체, 학생 간 체결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 등의 준수 여부를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해양레저과 고교생이 바다에 잠수, 요트 밑바닥의 따개비를 떼는 게 전공에 맞는 현장실습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은 7일 오후 서울에서 이같은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현장실습생의 계속되는 죽음, 우리는 분노한다!’는 성명서를 통해 어린 10대 고교생이 학교에서 공부했던 기술과는 무관한 위험하고 험한 일을 하며 단순 부품처럼 쓰여진 것은 아닌지 밝혀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잠수기능사 자격증도 없는 현장실습생이 최소한의 안전기준도 없이 홀로 바다에 들어가 전공과 무관한 작업을 하다 숨졌다”면서 “이게 특성화고 고교생을 위한 안전한 학습중심형 현장실습이냐”고 비판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광주 기아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A군은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자동차 공정 중에서도 3D라고 불리던 도장 작업에서 그는 주70시간 일12시간의 장시간 교대근무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에는 제주도의 음료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민호군이 프레스기 오작동으로 사망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현장실습 중 사망한 이민호군 사건이 벌어진 이후 ‘학습형 현장실습’을 발표했고 기업마다 현장실습 전담 지도자 직원을 두도록 했지만 취업률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자, 2019년 또다시 현장 실습 제도를 과거로 되돌렸다.

최서현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위원장은 “A군은 이제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훨씬 더 많으며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이라며 “정부는 지난 2018년 교육부장관이 나서 학생들의 안전한 실습처 보장을 위해 학습중심형 현장실습을 하고 안전이 검증된 선도기업을 선정하겠다고 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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