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단지 서울
꿀단지 서울
  • 문틈 시인
  • 승인 2021.09.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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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6층에 살던 때의 일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집안 거실의 한쪽 벽 밑으로 웬 개미떼가 새까맣게 줄을 지어 부엌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개미들은 저 아래 땅바닥에서부터 2층, 3층, 4층…, 벽을 타고 올라와 살짝 열려진 거실 창문의 틈새를 통해서 대집단의 행렬을 이루어 우리 집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개미떼가 줄을 선 부엌 쪽으로 가보니 아뿔싸 개미떼의 행렬은 꿀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꿀병 뚜껑을 채 닫지 못한 채로 놔두고 회사에 갔던 모양이다. 개미떼는 어림짐작에 수만 마리는 될 성불렀다. 어떻게 개미떼는 용하게도 6층 아파트 부엌에 뚜껑이 열려진 꿀병이 있는 줄을 알고 올라왔을까.

개미들은 꿀병 속에서 꿀을 한 모금씩 물고 들고나고 했다. 아마도 내가 사는 고을의 모든 개미들이 이 핫한 뉴스를 공유하고는 죄다 몰려드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나 많은 개미들이 마치 행진하듯 끊임없는 행렬이 우리집으로 진격해오는 것을 내려다보고 나는 왈칵 겁이 났다.

개미들은 꿀단지가 있는 곳이면 6층이 아니라 28층이라도 벽을 타고 올라갈 기세다. 그렇다. 저런 미물도 그러할진대 사람인들 오죽할까보냐. 서울 아파트값이 오름세를 보이니 그 냄새를 맡고 전국의 ‘개미’들이 돈을 싸들고 서울로 몰려들었다. 지난 1, 2년 어간에 서울에서 벌어진 아파트 폭등세에서 나는 오래 전의 개미떼 습격 장면이 떠올랐다.

서울에 꿀단지가 있는데 어찌 관두고 있을소냐. 영끌을 하여 서울에 아파트를 갭투자한 사람은 1. 2년 새 수억 원의 ‘꿀맛’을 보았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앉아서 마치 도둑을 맞은 느낌으로 벼락거지가 되어버렸다. 그때 집을 장만하지 못한 사람은 실 끊어진 연처럼 다시는 잡을 수 없는 기회에 좌절감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만일 정부가 서울 집값을 잡을 의지가 있다면 꿀단지를 서울 한 곳에만 두지 말고 광주, 인천, 대구 부산에도 놓아두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한 주요 공기업의 지역 이전 사업은 뜻은 좋았으나 결과는 그닥 실효가 적었다. 오히려 이전한 공기업을 따라온 사원들에게 아파트를 싸게 좋은 조건으로 공급하여 갑작스레 아파트 벼락부자를 만들어 주었다.

공기업이 이전한 지역에 떡 한 조각이라도 떨어져야 할 터인데 떡은커녕 떡고물도 차려지지 않았다. 공기업을 이전하려면 아예 지자체에 이전시켜서 지자체 소유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공기업의 사원채용, 사업 이익 등이 지역사회에 떨어져 쬐그만 꿀병이라도 놓아둔 효과가 있을 터이다.

얼마 전에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갔다. 병원을 찾아온 사람들이 구름처럼 많았다. 코로나 시국이라고 해도 아픈 몸을 고쳐야겠기에 만난을 무릅쓰고 찾아온 것이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이 병원엔 전국에서 환자들이 찾아온다. 하루 내방객이 2만명에 달한다고 들었다. 이것 역시 또 다른 ‘꿀단지’다.

훌륭한 의료시설, 숙련된 의사, 안락한 입원실 등이 있으니 기어이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병원을 광주, 부산, 대구, 인천 등지에 설립한다면 굳이 힘들게 서울로 가지 않아도 될 터이다. 서울로 가야만 병이 낫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다. 이건 아니올시다다.

아파트, 병원뿐일까. 대학도 ‘꿀단지’가 서울에 있으니 ‘인 서울’이니 해서 어떻게든 서울 지역의 대학에 가려고 봇짐을 싸들고 서울로 기어오른다. 기존의 틀에 갇힌 사고방식을 과감히 깨고 전국의 국립대를 서울대 캠퍼스로 만들어 서울대를 분산시키는 방안 같은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파리대학처럼 대학을 분야별로 지역에 캠퍼스를 둔다면 이것 또한 ‘꿀단지’를 각 지역에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광주에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를 두는 식으로 말이다.

지역을 살리려면 정부가 예산을 지역에 더 배정하는 것 같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의 정책을 펼 것이 아니라 꿀단지를 각 지역에 골고루 나누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개미들이 서울로 ‘내 발이냐, 네 발이냐’하고 몰려드는 서울앓이를 하지 않을 것이다. 제발 서울 주민에게 부가 치우치고, 서울 주민에게 의료접근이 용이하고, 서울아파트가 금싸라기가 되는 이런 꿀단지 서울을 지양하고 전국 주요 도시를 ‘꿀단지 지역’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역에 사는 것이 무슨 죄인가. 왜 이 나라는 건국 이래 매사를 서울 위주로 공들여 ‘서울공화국’을 만드는 데만 힘을 쓰는가. 지난 1. 2년 어간에 벌어진 서울 아파트값의 폭등세로 서울주민과 지역주민의 간격이 까마득히 멀어진 것을 보고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 정책을 과감히 혁파할 지도자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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