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나와라, 뚝딱
금 나와라, 뚝딱
  • 문틈시인
  • 승인 2021.09.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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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인에게서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그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사정상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데 새 아파트엔 가구도 없는 텅 빈 상태라 식탁 같은 가구들이 필요했다. 너무 비싸서 고민 중이었다.

그러다가 쓰레기장에 우연히 소파가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살펴보니 쓸 만했다. 중고라고 하기에는 아주 깨끗한 물건이었다. 그는 그 소파를 집에 들여 놓았다. 집안에 사람이 사는 느낌이 들었다. 소파보다 사실은 식탁이 더 긴요했다. 식탁을 알아보니 50만원이나 했다.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쓰레기장에 ‘가져가십시오’ 하듯 식탁이 나와 있었다. 4인용 식탁으로 유리판까지 깔려 있는 꽤 좋아 보이는 것이었다. 게다가 식탁의자 4개도 딸려 있었다. 두고 볼 것도 없이 집에다 갖다 놓고 하루 종일 때 빼고 광내는 작업을 했다. 완전 새것이랄 정도로 재탄생했다. 식탁 세트를 버린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지인은 소파와 식탁 세트를 들여 놓은 후부터 자주 쓰레기장을 둘러보았다. 용 조각을 양각한 혼자서 들기에 버거운 고풍스런 바둑판이 눈에 띄었다. 누가 이것을 내다 버렸을까. 하여튼 지인은 마치 누가 자기에게 선물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고 바둑판을 집에다 들여놓고 정성스레 때를 닦아냈다. 어엿한 고급 바둑판으로 번쩍거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지인에게 필요한 것들은 금방은 아니었지만 쓰레기장에 그 물건이 거짓말처럼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할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빈 아파트에는 소파, 식탁, 책상, 선풍기, 바둑판, 아령, 워킹머신, 침대받침, 텔레비전 받침대, 공기청정기, 그리고 책장, 책, 찻잔 세트, 밥그릇 등 살림살이들을 쓰레기장에서 구비했다.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며칠 후에 쓰레기장에 누군가가 어김없이 가져다(?) 놓았다. 마치 금 나와라, 뚝딱 하고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면 물건이 나타나는 동화 속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지인은 빈 집에 한 살림을 장만했다. 돈을 내고 새것을 장만했더라면 몇 백만 원은 좋이 될 터였다. 지인이 한 것이라곤 물건들을 가져다가 깨끗이 닦아내고 손을 본 것뿐이다.

운동기구 워킹머신은 사놓고 몇 번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았다. 틀림없이 홈쇼핑을 보고 홀려서 샀다가 막상 해보니 성가시고 힘들어서 버린 것이리라. 지인이 이렇게도 한 살림을 눈으로 장만할 수 있었던 것은 지인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전세 기간이 끝나 이사를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다.

오는 사람이 버리고 가는 사람이 버리고. 그렇다고는 하지만 멀쩡한 물건들을 왜 사람들은 버리는 것일까. 지인의 말에 의하면 요즘 세대들은 물건이 싫증나거나 관심이 시들해지면 금방 내다 버린다는 것이었다. 물건 귀한 줄을 모르고 유행이 지난 것, 오래된 것,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 싫증난 것들을 너무나 쉽게 버린다.

게다가 새 집으로 이사 갈 때는 ‘새 집에는 새것을’ 구호라도 외치는 듯 완전 새것들로 개비를 하느라 쓰던 것을 함부로 버린다는 것. 지인은 어지간한 것은 다 구비되었는데, 이제 텔레비전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한다. 삐까뻔쩍한 신제품 텔레비전 세트가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으니 분명 헌 텔레비전도 쓰레기장에 나올 것이라면서.

나는 쓰레기장을 뒤지는 지인을 나무라기는커녕 한껏 칭찬을 해주었다. 물건을 재활용하는 측면에서 볼 때 물자절약,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되는 행동이 아닌가. 요즘은 상한 우산을 고치러 오는 사람도 없어지고, 길가에 신기료 장사꾼도 사라졌다.

무엇이든 새것이 통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살림살이 물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파트도 새집이라면 기를 쓰고 달려든다. 이 무섭도록 왕성한 새것 콤플렉스에 나는 어안이 벙벙하다. 헌것을 함부로 버리는 세태가 못마땅하다. 만일 사람들이 고장 나면 고쳐 쓰고, 헌것은 닦아 쓰고, 그런 절약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검소한 생활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멀쩡한 물건들을 버린다면 항상 소금 먹은 사람처럼 물을 찾게 될 것이다.

하기는 얼마 전 신문에 미국의 한 부부가 쓰레기장을 뒤져 화장품, 향수병, 옷가지 등 새것이나 다름없는 것들을 찾아내 되팔아 한 달에 우리 돈으로 500만원 벌이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실렸다. 그들 부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쓰레기장을 뒤지는 전업 재활용가로 나서 수입이 짭짤하다고 한다.

물건을 마구 버리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현상은 아닌 모양이다. 재활용은 거창하게 말하면 지구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북한 주민들은 비닐봉지도 몇 번이고 재사용한다고 한다. 지인처럼 쓰레기장에서 검소와 절약을 발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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