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0) - 추야감회(秋夜感懷)(3)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0) - 추야감회(秋夜感懷)(3)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9.13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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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개로운 이 마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3] : 秋夜感懷 / 도은 이숭인

긴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몸부림들이 눈에 훤히 보인다. 어디 자연 뿐이겠는가. 일 년 내내 땀 흘리면서 고생고생 농사지었던 농부들도 겨우살이 준비에 추수를 하기에 바빴다. 논에서는 벼 수확하느라 분주하고 밭에선 무와 배추 거둬들이기에 한창이다. 월동준비는 또 다른 생명 잉태의 모습을 보게 한다. 이런 알찬 계절을 음미하는 시 한 수를 지어 다시 길게 읊었더니, 뜨락에서는 이미 풀벌레 울음소리가 기다려졌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秋夜感懷(추야감회)[3] / 도은 이숭인

감미로운 마음이 어디에서 생겨나나

괴롭게도 시심이 나에게서 읊게 하나

시 지어 길게 읊어 본 풀벌레 울음소리.

感慨何方來 令我苦唫詩

감개하방래 령아고금시

詩成復長詠 庭際俟蟲嘶

시성부장영 정제사충시

감개로운 이 마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秋夜感懷)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셋째구인 오언율시풍이다. 작자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감개로운 이 마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나를 괴롭게 이런 시 읊게하네 // 시 한 수를 지어 다시 길게 읊어보니 / 뜨락에서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자꾸 기다려지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깊어가는 가을밤의 감회(3)]로 번역된다. 전구에서 추녀와 섬돌은 자못 상쾌하기만 하고 오래 앉아 있으니 마음 절로 기쁘다고 했다. 자연은 굽어보고 올려 봐도 끝없이 넓어만 보이는데, 만고의 고통도 한 때와 같은 것이란 자연과 합일하는 한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시인은 단상에 젖은 나머지 가을의 감회를 시상에 대비하면서 자신의 읊은 시 한 수에 대비해 보인다. 감개한 마음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인가는 분명 나를 괴롭게 시를 읊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되묻는다. 가을이 주는 단상 속에 온갖 영상들이 이렇게 시를 읊게 하는 보은報恩을 주었다고 했다. 화자는 또 한 편의 시를 지어 길게 읊어보니 자연의 묘미처럼 여러 마리의 풀벌레가 합주하는 듯했다. 시를 지어 다시 길게 읊으며 한 곡조를 멋지게 뽑으니 섬돌이 놓인 뜨락에선 풀벌레 울음소리가 합주하듯이 기다려진다고 했다는 시상이다.

첫 구에서 시인이 읊었던 시상은 [밝은 은하수 중천에 걸쳐있고 / 별과 달은 선명한 빛처럼 흐른다 / 많은 이슬 푸른 풀에 어려 빛나고 / 서늘한 바람은 높은 가지를 스친다]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감개 마음 어디 생겨 괴로웁게 시를 읊네, 시 한 수를 지어 읊어 기다리는 벌레 울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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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이다. 김구용, 정도전 등과 더불어 북원 사신을 물리칠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집권세력이었던 친북원파 대신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복권되어 성균사성, 우사의대부 등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感慨: 감개롭다. 혹은 감개로운 마음. 何方來: 어느 방향에서 오는가. 令我: 나로 하여금. 苦唫詩: 고통스럽게 시를 읊다. 혹은 시를 읊게 하다. // 詩成: 시를 짓다. 復: 다시. 長詠: 길게 읊다. 庭際: 정원의 가에서. 俟蟲嘶: 풀벌레 울음소리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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