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39) - 추야감회(秋夜感懷)(2)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39) - 추야감회(秋夜感懷)(2)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9.06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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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어보고 올려봐도 끝없이 넓어만 보이는데[2] : 秋夜感懷 / 도은 이숭인

가을이 돌아오면 추녀 끝에서부터 싸늘함을 느끼게 한다. 섬돌의 귀뚜라미는 언제 자취를 감추었지 소리를 낮추어 버린 지 오래다. 온통 단풍잎은 서리의 꾸중이 싫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두더지도 힘을 쓰지 못하고 먹을 것을 비축하느라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이 모든 자연은 시인의 마음을 신비스럽게 했겠다. 추녀와 섬돌은 자못 상쾌하기만 하고, 오래 앉아 있으니 마음이 절로 기쁘기만 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秋夜感懷(추야감회)[2] / 도은 이숭인

추녀 섬돌 상쾌하고 마음 절로 기쁜데

굽어보고 올려 봐도 끝없이 넓고 넓어

만고의 한때의 고통 한 때 같은 것이네.

軒墀頗爽塏 坐久心自怡

헌지파상개 좌구심자이

俛仰矌無垠 萬古同一時

면앙광무은 만고동일시

굽어보고 올려봐도 끝없이 넓어만 보이는데(秋夜感懷)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둘째구인 오언율시풍이다. 작자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추녀와 섬돌은 자못 상쾌하기만 하고 / 오래 앉아 있으니 마음이 절로 기쁘기만 하네 // 굽어보고 올려 봐도 끝없이 넓어만 보이는데 / 만고의 고통도 한 때와 같은 것이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깊어가는 가을밤의 감회(2)]로 번역된다. 전구에서 하늘 하늘의 초롱초롱한 별과 달을 노래하면서 바람에 흔들거리는 풀잎의 신기함의 시상을 놓았다. 깊어가는 가을 전경의 감회였으리라. 아무렴 해도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은 다음 해를 멋지게 준비하는 그러한 계절이 아닌가 보인다. 시인은 이제 추녀와 섬돌로 시선을 돌리더니만 마음이 절로 기쁘다는 선경의 시상을 먼저 그려내고 있다. 빗줄기가 내리는 추녀와 피부가 메마른 섬돌은 자못 상쾌하기만 하고, 오랫동안 앉아있으니 마음이 절로 기쁘다는 시상이 그것이다. 자연에 깊이 취한 시인의 반가운 감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화자는 가을의 단상斷想은 아무리 우러러 봐도 끝없이 펼쳐지고만 있고, 인간의 모든 고통도 한 때와 같은 것이라는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굽어보고 올려 봐도 이 가을은 끝없이 넓어만 보이고, 만고의 고통도 한 때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셋째 구에서는 [감개로운 마음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인가 / 나는 괴롭게 시를 읊어보는구나 // 시를 지어 다시 길게 읊으며 / 뜨락에선 풀벌레 울음소리 기다린다]라고 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추녀 섬돌 상쾌하니 마음 절로 기쁘다네, 굽어보니 끝없는데 만고 고통 한 때 같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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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숙옹부승으로 임명되었고 거듭 승진해 장흥고사 겸 진덕박사를 겸하였다. 예의산랑, 예문응교, 문하사인을 역임한 후 우왕 때 전리총랑을 역임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軒: 추녀. 墀: 섬돌. 頗: 자못. 爽塏: 상쾌하다. 坐久: 오래 앉아있다. 心自怡: 마음이 저절로 기쁘다. // 俛仰: 구부리고 우러르다.(송순의 명앙정도 있음) 矌: 볼 광. 눈동자 없을 광. 無垠: 끝없다. 萬古: 만고. 혹은 만고의 고통. 同一時: 한 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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