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선풍기 끼고 산다’ 효과는?
폭염에 ‘선풍기 끼고 산다’ 효과는?
  • 최용선 시민기자
  • 승인 2021.07.15 1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온 35°C 이상 속 선풍기 사용 말라" 속설
​​​​​​​호주 논문, "젊은 성인 39°C 사용 문제 없다"
선풍기 저체온증은 근거 없어
결론,습도와 개인 건강 따라 달라

전업주부들은 모두 출근한 뒤 홀로 남아 이런저런 가사일을 돕는다.

폭염을 견디기 위해 다양하게 활용하는 선풍기  

봄 가을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 때는 괜찮지만 요즘 처럼 폭염특보가 내려지면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배어 나온다. 에어컨을 켜면 시원하겠지만 그렇다고 건강 및 재정 지출을 이유로 왠 종일 틀 순 없다.
그래서 대안으로 선풍기에 의지한다.

"기온이 35°C를 넘으면 선풍기를 계속 사용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 환경보호국(EPA)·질병통제예방센터(CDC), 영국 국립보건서비스 같은 여러 공중보건기관의 조언이다.

주변 온도가 35°C 이상인 경우 상대 습도와 상관없이 선풍기가 냉각 효과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체온 상승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변 기온이 피부 온도(약 35°C)를 초과할 때 선풍기를 사용하면 오히려 주변 환경의 열이 신체로 빨려 들어오게 되며 땀 증발 속도를 현저하게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럴까. 궁금하다.
그렇지 않다. WHO는 '35°C 임계치'는 구체적인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선풍기가 35°C 이상에서 더위를 식히는 데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얘기를 단선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효과 유무는 주변 습도와 개인의 땀을 흘리는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다. 

호주 시드니대학교 의학·보건학부 열(熱) 인체공학연구실의 올리 제이 교수와 덴마크·캐나다 등 국제연구팀은 지난달 국제 저널인 '랜싯 지구 보건(Lancet Planetary Health)'에 게재한 논문이 대표적 사례다.
논문에서는 "젊은 성인의 경우 상대습도와 상관없이 주변 기온이 39°C에 오를 때까지 선풍기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건강한 노인의 경우는 38°C까지, 항(抗)콜린제를 복용하는 노인의 경우도 37°C까지는 선풍기를 사용해도 괜찮다는 '선풍기 사용 온도 임계값'을 제시했다.
항콜린제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수용체를 차단하는 약물로 알레르기, 불면증, 과민성 방광, 우울증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심장박동 저하, 혈압 강하, 방광 근육 수축, 호흡근 수축 등 부교감신경이 하는 일을 억제하며, 땀이 나는 것도 억제하기도 한다.

논문에서는 선풍기 온도 임계값을 얻기 위해 전 세계 108개 도시를 대상으로 2007~2019년에 관측된 온도와 습도를 바탕으로 생물물리학적 모델을 개발했다.
“35°C 넘으면 선풍기 틀어도 효과 없다”는 속설을 논문에서 뒤집은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 생리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50%의 상대습도와 40~42°C에서는 몸속 체온인 심부 체온의 상승, 심박 수의 증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약 10%의 낮은 상대습도와 47°C의 고온에서는 땀이 빠르게 증발하기 때문에 굳이 선풍기가 아니더라도 고체온증 발생을 높이는 것으로 관찰됐다.

또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50% 이상의 상대습도와 42°C 온도에서는 선풍기 사용의 효과는 사라지고, 경우에 따라 해로울 수도 있다.
이는 젊은 사람에 비해 땀 흘리는 정도가 약 25% 줄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건조한 지역인 중동과 미국의 남서부 지역, 그리고 습도가 아주 높고 폭염이 극심한 시기의 인도 북부나 파키스탄에서 선풍기 사용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찬반 논란 속에 한국은 어떨까.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서 사상 최고기온인 39.6°C가 기록됐던 2018년 8월 1일의 경우 해당 시간의 상대습도가 38% 정도였다.
또,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8.4도를 기록했던 1994년 7월 24일의 경우 해당 시간의 상대습도는 31%였다.

이 측정치를 호주 연구팀의 그래프에 대입해보면, 서울의 경우 젊은 성인이나 건강한 노인의 경우 선풍기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 범위에 해당했다.
항콜린제를 복용하는 서울의 노인도 아주 극단적인 기온(극값)일 경우에만 선풍기가 도움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과거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들 경우 저체온증이나 질식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의학적 근거는 없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뇌경색 등으로 돌연사가 발생했는데, 사망자가 우연히 선풍기를 켜놓은 경우도 있어 그런 속설이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려면 심부 체온이 8~10도씩 떨어져야 하는데, 더운 여름철에 선풍기를 아무리 강하게 틀어도 2~3도 이상 체온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저체온 등과는 상관이 없다.
더욱이 선풍기를 오래 튼다고 해서 방 안의 산소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질식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렇게 무더위 속 선풍기 효능에 대한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에어컨 대신 선풍기 사용하면 온실가스 배출 줄어든다는 논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에어컨 사용은 냉장 부문과 합쳐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10%를 차지한다.

이는 에어컨이 전 세계 수소불화탄소 배출량의 65%를 차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수소불화탄소의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10~1000배나 된다.
수소불화탄소만으로도 21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을 0.25~0.5°C 끌어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결국 이번 문제제기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이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더위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없지만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모두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사용하면 전 세계 수소불화탄소 배출량을 59% 줄일 수 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9%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