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31) - 어주도(漁舟圖)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31) - 어주도(漁舟圖)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7.05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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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락 피리소리에 강물 달빛은 밝아오고 : 漁舟圖 / 제봉 고경명

어부가 배를 타고 고기 잡는 모습은 신선해 보인다. 마치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을까 착각할 정도다. 흔히 어옹漁翁이라고 했다. 고기를 잡고 있다기보다는 세월을 낚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많다. 분명 그는 하늘의 도인이 살며시 내려와 호수에 낚시를 담그거나 그물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빠질 때가 많다. 갈대 섬에 바람이 서서히 이니 눈발은 흩날리고, 술을 사서 다시 돌아와 뜸집에 배를 매어놓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漁舟圖(어주도) / 제봉 고경명

갈대 섬에 바람이니 눈발이 흩날리고

술을 사서 돌아와 뜸집에다 배 매는데

몇 가락 피리 소리에 자던 새도 나르네.

蘆洲風颭雪漫空 沽酒歸來繫短蓬

노주풍점설만공 고주귀래계단봉

橫笛數聲江月白 宿鳥飛起渚煙中

횡적수성강월백 숙조비기저연중

몇 가락 피리소리에 강물 달빛은 밝아오고(漁舟圖)으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1533~159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갈대 섬에 바람이 이니 눈발은 흩날리고 / 술을 사서 다시 돌아와 뜸집에 배를 매어놓았네 // 몇 가락 피리소리에 강물 달빛은 밝아오고 / 잠자던 새들까지도 물가 안개 속에서 날아오르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고깃배 그림을 보며]로 번역된다. 우리 옛 성현들의 그림을 보면 어부가 고기 잡는 그림이 많이 등장한다. 익살스런 그림에 가끔 배꼽을 쥐어 잡는 수가 있다. 그렇게 생동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배꼽을 내놓고 고기의 움직임에 장단이라도 맞출 양하는 사람을 보면 그런 느낌이 더 든다. 시인은 익살스런 고깃배의 그림을 보면서 또 하나의 다른 화도를 상상해 내듯이 시어를 통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갈대 섬에 살랑한 바람이니 눈에 흩날리고 있을 때, 술을 사서 들고 돌아와 뜸집에 배를 매놓았다는 시상의 그림이다. 그야말로 어주魚舟의 그림 한 폭이다. 시인이 사온 술 한 병을 갖고 화자는 멋진 가락을 연주하며 밝은 달밤에 뱃전의 한 곡을 뽑지 아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몇 가락 피리소리 강물에 달빛은 마냥 밝아오고, 잠자던 새들도 물가 안개 속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른다고 했다. 영락없이 신선이 어주를 등에 짊어지고 물로 헤엄치며 걸어가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밑그림 한 폭이리라. 우리 선인들은 그런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며 살았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갈대 섬에 눈발 날려 술을 사서 배를 매네, 몇 가락 피리 소리에 잠자던 새 날아올라’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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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1533∼1592)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1558년(명종 13)에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고, 이어서 공조좌랑이 되어 일약 발탁되었다. 그 뒤 형조좌랑, 사간원정언 등을 거치면서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를 했다.

【한자와 어구】

蘆洲: 갈대섬. 風颭: 바람에 물들이다. 雪漫空: 눈에 질펀하게 하늘을 날다. 沽酒: 술을 사다. 歸來: 돌아오다. 繫短蓬: 뜸집에 배를 짧게 매어놓다. // 橫笛: 빗기는 피리 소리. 數聲: 몇 가락. 江月白: 강물에 빛 밝아오고. 宿鳥: 잠자던 새. 飛起: 날아오르다. 渚煙中: 물가 안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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