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진
옛날 사진
  • 문틈 시인
  • 승인 2021.06.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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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카를 찍어본 적이 없다. 내키지 않아서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멀리 두고 기억에 담아둘 뿐 그것을 배경으로 제 모습을 촬영해본 일이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단 둘이서 사진을 찍어본 기억도 희미하다. 사진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아무리 멋지게 찍었다고 해도 훗날 보면 너무 쓸쓸해 보인다. 빛바랜 옛날 사진은 더 쓸쓸하다. 옛날 사진은 마치 지독한 쓸쓸함을 찍은 듯하다. 그래서 나는 좀처럼 사진 찍기를 꺼려한다. 어머니가 집안 정리를 하다가 내 초등학교 졸업사진, 중고등학교 시절의 사진 몇 장, 그리고 대학 졸업사진 같은 옛날 사진들을 찾아 주셨다.

흘러간 시절의 빛바랜 흑백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면서 가슴에 차오르는 쓸쓸함에 빠져 소리쳐 울 뻔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움, 회한 같은 감정이 나를 슬픈 감정의 골짜기로 데려갔기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나는 지금의 나 자신에 당황하곤 한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리고 말았을까. 내 마음은 늘 아침에 솟아오르는 눈부신 태양에 환호하고 하늘에 사다리처럼 걸린 무지개를 보고 찬탄을 발하는 어린 날에 있건만 갑자기 내 육체는 시들고 나이가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나는 어린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이런 나의 지금 모습이 낯설고 생뚱맞다. 내가 아닌 다른 가면을 쓴 모습이 나를 만토처럼 갑자기 덮어 씌워 버린 듯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아닌 것만 같다. 이 낯설기만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옛날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세월은 마치 거친 홍수가 개울 바닥을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나를 볼썽사납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있건만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 대체 그새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간다고 아이들이 새옷을 차려입고 담임선생님 댁으로 가야했다. 집에서 새신발을 찾는데 토방에 벗어 놓은 신발 중에 새로 산 운동화가 한 짝밖에 없어서 나머지 신발을 찾느라 발을 동동거렸던 날이 어제인 것만 같다. 얼마나 설레고 급했던지 나는 그만 새 운동화와 헌 고무신을 한 짝씩 신고 어둑신한 새벽에 집을 나섰다는 것을 후에야 알아차렸다.

수학여행 내내 찍힌 사진에는 고무신 한 짝을 신은 발을 감추려고 애쓴 모습이 부끄럽게 찍혀 있다. 이것이 옛날 사진이다. 옛날은 사진에 찍혀 있고, 나는 그 사진들을 마치 환영인 양 들여다보고 있다. 정말 사진에 박힌 그 장면들이 내게 일어난 일이었을까.

내 옆자리에 웃음을 짓고 있는 담임선생님은 음악시간에 곧잘 아코디언을 켜주셨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아마도 벌써 전에 돌아가셨을 것이다. 옛날 사진은 제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사진이라고 해도 내게는 아득히 먼 날의 슬픔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좀처럼 사진을 찍지도 찍히지도 않으려 한다.

옛날 사진은 그때의 시간을 찍은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해외여행, 등산, 결혼식, 셀카, 어떤 사진이든 결국은 그때의 시간을 찰칵한 것이다. 그 사진에 박힌 시간은 흘러가버렸고, 그 사진을 보는 나는 다른 시간에 있다.

옛날과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시간의 깊은 강이 흐른다. 아마도 옛날 사진이 슬픈 것은 사진에 찍힌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보는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더구나 그 사진 속의 인물들 중에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에 그림자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 사진에는 정답게 함께 있건만 지금은 소리쳐도 대답 없는 사람들. 아무리 사진을 봐도 내 눈에는 슬픔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옛날 사진은 시간이 자아낸 슬픔의 증거라고나 할까. 구한 말 선교사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이런 감정이 더 심해진다. 흰 옷을 입은 수많은 남녀노소가 카메라의 렌즈에 눈길을 모으고 찍혀 있는 사진들. 그 사진들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지금 단 한 사람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옛날 사진을 공중에 던지기라도 하면 사진 속의 사람들이 요술처럼 내 앞에 짠하고 나타날 수는 없을까. 인생은 시간 앞에 한없이 무력한 존재다. 언젠가는 시간이 다 데려가 버리고 만다. 인간은 시간 사이에 반딧불처럼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진다. 오, 그러나, 그러기에, 시간의 올무에 걸려 슬퍼하지 말고 모든 것들을 쥐었거든 놓으라. 나조차도 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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