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31) - 강화도 회담
조선, 부패로 망하다 (31) - 강화도 회담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1.06.21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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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1월 17일에 접견대관 신헌이 일본의 특명전권변리대신(特命全權辨理大臣) 구로다 기요타카, 부대신(副大臣) 이노우에 가오루와 강화도 군영 안의 연무당에서 회담하였다.

경복궁 사정전 (왕의 업무공간)
경복궁 사정전 (왕의 업무공간)

일본은 5척의 군함을 이끌고 왔는데, 중무장한 군인 400명이 강화도에 상륙했다.

구로다는 육군 중장 출신이었고, 신헌 역시 무관이었다. 회담내용은 1월 19일의 ‘고종실록’에 실려 있다.

구로다 : 두 나라에서 각각 대신(大臣)을 파견한 것은 큰일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고, 또 이전의 좋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헌 : 300년간의 우호관계를 회복해서 신의를 보이고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참으로 두 나라 간의 훌륭한 일이므로, 감격스럽고 감격스럽습니다.

구로다 : 이번 사신의 임무는 이전에 히로쓰 히로노부가 언급했던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교린의 도리로써 화목하게 지내지 않고 어찌하여 이렇게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입니까?

신헌 : 교린이래 늘 격식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 것이 오랜 전례가 되어버렸습니다. 귀국이 먼저 종전의 격식을 어긴 상황에서 변경을 책임진 신하는 그저 종전의 관례만 지키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소한 말썽을 가지고 좋은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는 이 마당에 장황하게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구로다 : 우리 배 운양함이 작년에 우장(牛莊)으로 가는 길에 귀국의 영해를 지나가는데, 귀국 사람들이 포격을 하였으니 교린의 우의가 있는 것입니까?

신헌 : 남의 나라 경내에 들어갈 때 금지 사항을 물어봐야 한다는 것은 《예기(禮記)》에도 씌어 있습니다. 작년 가을에 왔던 배는 애초에 어느 나라 배가 무슨 일로 간다는 것을 먼저 통지도 하지 않고 곧바로 방어 구역으로 들어왔으니, 변경을 지키는 군사들이 포를 쏜 것도 부득이 한 일입니다.

구로다 : 운양함에 있는 세 개의 돛에는 다 국기를 달아서 우리나라의 배라는 것을 표시하는데 어째서 알지 못하였다고 말합니까?

신헌 : 그때 배에 달았던 깃발은 누런색 깃발이었으므로 다른 나라의 배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설령 귀국의 깃발이었다고 하더라도 방어하는 군사는 혹 모를 수도 있습니다.

구로다 : 우리나라의 깃발의 표시는 무슨 색이라는 것을 벌써 알렸는데 무엇 때문에 연해의 각지에 관문(關文)으로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신헌 : 여러 가지 문제를 아직 토의 결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것도 미처 알려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귀국의 군함이 영종진의 군사 주둔지를 몽땅 태워버리고 군물(軍物)까지 약탈해간 것은 아마 이웃 나라를 사귀는 의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먼저 동래부로 부터 사신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손님에 대한 예의로 접대하는 것이니 또한 양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표류해 온 배에 대해서까지 먼 지방 사람을 잘 대우해주는 뜻으로 정성껏 대우하여 주는데 어찌 귀국의 군함을 마구 쏘겠습니까?

구로다 : 이번 사신의 일은 두 나라의 대신이 직접 만나서 토의 결정하려는 것입니다. 일의 가부(可否)를 귀 대신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까?’

신헌: 귀 대신은 먼 지역을 나왔으므로 상부의 지시를 받들어 시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전권(全權)이라는 직책을 가진 것이지만, 우리 조선은 국내에서 전권이라는 칭호를 쓰지 않습니다. 하물며 수도 부근의 연해인 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나는 그저 접견하러 왔으니 제기되는 일을 보고하여 명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중략)

사정전 안내문
사정전 안내문

구로다 : 예전에 서로 대치하였던 일과 연전에 새 서계를 받아주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 다 뉘우칩니까?

신헌 : 한마디로 말해서 전날의 사건은 얼음이 녹듯 완전히 풀렸는데 다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구로다 : 득실(得失)을 따지지 말고 덮어두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은 실로 부당한 말입니다. 설령 친구 간의 약속이라도 저버릴 수 없는데, 하물며 두 나라 사이에 좋게 지내는 우의(友誼)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신헌 : 7, 8년 동안 관계를 끊어버린 이유는 이미 남김없이 다 드러났습니다.

구로다 : 이제 운양함이 우리 배라는 것을 알았으니 옳고 그른 것이 어느 쪽에 있으며, 그때 포격을 한 변경 군사들을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대관 : 이것은 알면서 고의적으로 포를 사격한 것과는 다릅니다.

구로다 :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두 나라 간에 조약을 체결해서 영구히 변치 않게 된 다음에야 좋은 관계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이후 신헌은 다과를 준비하였다고 말했고, 구로다는 사양하다가 호의를 받아들였다. (고종실록 1876년 1월 19일)

1차 회담을 보면 구로다는 운양호 사건과 국서 문제를 추궁했고, 신헌은 변명하기에 바빴다. 협상에서 방어는 패배나 마차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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