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8) - 차우인운(次友人韻)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8) - 차우인운(次友人韻)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6.14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꿈에서나 새벽달과 같이 임금님을 보는구나 : 次友人韻 / 취죽 강극성

퇴근길에 주막집에 들려 한 잔 했던 것은 예나 이제나 같은 풍습이었던 것 같다. 시계를 잡히고 술을 먹는 일은 흔히 있었던 일이고, 옷이며 조복까지 잡히는 일도 빈번했던 것 같다. 남자의 못된 술주정이었으리라. 그 뿐만 아니다. 집이 가난하다 보면 출퇴근용으로 관에서 받은 말까지 팔아 밭을 샀던 경우도 있었으리라. 귀하고 중한 나라의 은혜 아직도 다 갚지를 못했는데, 하사 받은 말로 몇 이랑 밭을 사려고 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次友人韻(차우인운) / 취죽 강극성

조복을 전당 잡혀 술집에서 자다보니

하사 받은 말로 몇 이랑 밭을 사려나

귀중한 나라 은혜를 꿈속에서 보누나.

朝衣典盡酒家眠 司馬將謀數頃田

조의전진주가면 사마장모수경전

珍重國恩猶未報 夢和殘月督朝天

진중국은유미보 몽화잔월독조천

꿈에서나 새벽달과 같이 임금님을 보는구나(次友人韻)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취죽(醉竹) 강극성(姜克誠:1526~1576)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조복을 전당 잡혀놓고 술집에서 자다가 / 하사 받은 말로 몇 이랑 밭을 사려고 하네 // 귀하고 중한 나라의 은혜 다 갚지를 못해 / 꿈에서 새벽달과 같이 임금님을 보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친구의 운을 빌어서]로 번역된다. 친구와 산수를 즐기면서 같은 운자를 놓고 시를 지었던 경우는 흔히 있었다. 운자를 같이 놓거나 시제를 같이 놓은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또한 시제와 운자를 같이 놓은 백일장의 모임도 눈여겨보면서 시를 이렇게 짓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비록 시제와 운자가 같을지라도 시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시인은 임금을 배알하기 위한 조복을 전당 잡혔던 모양이다.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이를 숨김없이 시상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조복을 전당에 잡혀 술집에서 잠을 잡혔던 경험도 있고, 임금님께 하사 받았던 말馬로 몇 이랑 밭을 사려는 그런 배반적인 일탈逸脫 행위까지 했겠다. 그런 행위가 좋다고 할 수만은 없겠지만 젊었을 때 한 번쯤의 경험은 다음 행위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화자는 이제야 말로 뉘우치고 회고하는 한 시상을 일구어 내고 있다. 이는 귀하고 중한 나라의 은혜일진데 다 갚지 못하고, 꿈에서 새벽달과 같이 함께 임금을 배알했으니 망신스런 신하가 되고 말았다는 사상에 한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조복 잡혀 술집 자고 하사 말로 이랑 밭을, 나라 은혜 갚지 못해 새벽달에 임금 배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작가는 취죽(醉竹) 강극성(姜克誠:1526~1576)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강희맹의 4대손이다. 문학, 지평, 부교리, 교리, 부응교, 장령, 사간 등 청요직을 두루 지냈다. 1546년(명종 1) 진사가 되었고 155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3년 뒤 다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해 문명을 떨쳤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朝衣: 조복. 典盡: 전당에 잡히다. 酒家眠: 술집에서 자다. 司馬하사받은 말. 將謀: 장차 ~하려고 하다. 數頃田: 두어 이랑의 밭. // 珍重: 귀하고 중하다. 國恩: 나라의 은혜. 猶: 오히려. 未報: 갚지 못하다. 夢和: 꿈에서 화하다. 殘月: 남은 달. 督朝天: 임금을 배알하다. 아침 문안을 드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