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형 人災로 ‘민낯’ 드러낸 광주 대참사
후진국형 人災로 ‘민낯’ 드러낸 광주 대참사
  • 박병모 기자
  • 승인 2021.06.10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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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동구 철거건물 붕괴로 17명 사상자 발생
​​​​​​​지난 4월 이어 2개월 만에 또 발생...현장 감리도 없어
​​​​​​​합동수사팀→수사본부 격상…재개발사업 전반 수사

"제발 내 아들 얼굴이라도 보게 해달라"

9일 오후 5층짜리 건물 붕괴로 대로변 6차선까지 덮쳐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참사현장 

지난 9일 오후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철거건물 참사 현장에서 40대 여성이 아들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붕괴 사고 현장을 지나던 운림 54번 버스에 탔다가 참변을 당한 고교생의 어머니였다.

사고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관에게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애원했다.
"우리 아들이 매몰된 것 같으니 얼굴이라도 보게 들여보내 달라“고 매달렸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2학년이고, 가방을 메고 있다. 직접 눈으로 아들을 확인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경찰은 “2차 붕괴가 발생할 수 있고, 사건 현장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가까스로 설득하고 제지했다.
어머니가 목메어 찾던 그 아들은 꽃다운 나이에 채 피지도 못한 채 싸늘한 주검이 돼 사망 9명 중의 한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사고현장에 달려와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마치 자신의 아들이 변을 당하기라도 한 듯 슬픔을 마음으로 삼켜야 했다.

이런 대낮에 대참사가 하필이면 광주에서 일어나 광주의 민낯이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에 광주시민들은 아연실색했다.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후진국형 인재’라는 사실 앞에서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을 게다.

그것도 지난 4월 같은 동구 계림동 목조주택 매몰사고 이후 두 달여 만에 유사한 붕괴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다는 점에서다. 사고 당시 119구조대가 출동해 매몰자 구조에 나섰으나 납품업체 관계자와 일용직 노동자 등 2명이 숨졌다.
이제 관할 동구청으로서는 안전 불감증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다.

9일 건물 붕괴 참사 현장에서 구조활동에 나선 소방당국 대원들 

아시다시피 사고가 발생한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은 남광주역에서 지원동으로 연결되는 남문로 6차선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평소에도 교통량이 많고 인근에 무등산 입구 증심사와 화순으로 오가는 시민들은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곤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붕괴사고가 일어난 5층 건물 옆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눈에 밟힌다.
건물을 철거할 때는 사전 예방차원에서 버스정류장을 잠시 이설하거나 작업 인부를 시켜 차량을 통제하거나 통행인을 유도했어야 했다는 점에서다.

철거 당시 작업자 2명이 있었다고 하나 건물이 이상 징후를 보이자 자신들이 먼저 빠져나오기에 바쁘다 보니 때마침 이곳에 잠시 정차했던 시내버스를 통제하지 못해 참변으로 이어졌다.
마치 세월호 참사 때 처럼 배치된 작업자들이 통행 차량에 적극적인 조치 없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줄행랑을 놨으니 말이다.

철거작업 업체의 허술한 안전관리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5층 건물이고 인근에 버스정류장이 있다면 정밀조사를 통해 건물 안전성을 진단한 후에 작업에 나서야 했음에도 건물 옆에 토사를 쌓아놓고 굴삭기를 동원해 내리찍는 낡은 공법으로 작업을 한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당시 굴삭기는 사고 전날 건물 뒤편 아래층 일부를 허문 뒤 쌓은 폐자재·흙더미 위에서 벽체를 부수는 작업을 하다보니 수평 하중이 앞쪽으로 쏠리면서 버스정류장과 인도를 덮쳤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철거업체가 만일의 붕괴사고에 대비해 인도와 차도 반대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도록 했다면 이런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철거 잔해가 주로 버스 뒤편을 순식간에 덮쳐 버스 자체가 휴지조각 처럼 파손됨으로써 뒤쪽 좌석에 있던 대다수가 사망한 반면 운전자와 버스 앞쪽의 승객들이 크게 다쳤다는게 그 반증이다.

여기에 30년 가까이 된 노후건물이란 점을 고려하지 않는데다 붕괴 당시 현장감리마져 없었던 점도 대형 참사로 이어지게 하는데 한몫 했다.
사고 현장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면 모든 게 드러나겠지만 현재 문제점으로 제기된 하청→ 재하청의 구조로 인해 공사가 진행됐다고 한다면 이에 대한 진실도 밝혀져야 한다.

흔히 광주시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부 재개발사업주택조합이 내부 이해관계나 회계상 부정 등으로 수사 당국의 조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때맞춰 광주경찰청이 국가수사본부 지침에 따라 합동수사팀을 수사본부로 격상해 사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니 다행스럽다.
강력범죄수사대가 사고 관련 내용을 수사하고,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재개발사업 전반적인 사항을 살펴보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번 건물 붕괴사고는 후진국형 인재라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까지 나서 유감을 표시하고 재발방지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행안부는 자체 상황관리반을 운영하고 청와대, 행안부, 소방청, 경찰청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상황점검회의를 갖는 등 수습에 나서고 있다.
전해철 행안부장관이나 이용섭 시장도 이번 사고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현재 광주시내 곳곳에서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광주 동구청과 광주시의 관리감독 책임과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철거 업체에 대한 철저한 수사에 나서야 한다. 
만에 하나 이런 참사를 일어나게 된 배경에 부패 고리가 얽혀있다는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난다면 민주·인권·평화와 안전도시를 지양하는 광주시로서는 얼굴을 들 수 없을게다.

무릇 행정의 기본이 생활 안전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행정기관이 이를 게을리 했다면 광주시에 대한 불신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불안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서다.
광주시는 동구청 청사 광장 앞에 시민 합동분향소를 설치키로 했다.
임택 광주 동구청장은 10일 사고 현장에서 긴급 브리핑을 통해 "차질 없이 후속 대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분야별로 5개 전담반을 꾸려 모든 행정적 지원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에서 철거 공사를 진행 중인 5층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버스정류장에 잠시 정차중인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운전기사를 포함한 8명이 중상을 입은 채 구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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