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거리두기
어머니의 거리두기
  • 문틈시인
  • 승인 2021.06.0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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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한다. 구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귀가 좀 어두워서 전화로 말할 때는 내가 큰소리로 외치듯 해야 한다. “별 일 없으세요?” “뭐라고? 괜찮다.” “생선이랑 계란도 드시고 과일도 드시고…” 전화를 할 때마다 나의 잔소리가 빠지지 않는다. 안부 전화가 아니라 깨알 잔소리 전화다.

그러면 어머니는 “난 잘 있으니 너나 잘 먹고 지내야. 육고기 싫다고 외면하지 말고. 남의 살도 먹어야 되어야.” 대체로 이런 내용의 전화이다. 요 며칠 전부터는 내가 스마트폰으로 개비하게 되어 화상 통화도 한다. 햇수로 3년여 만에 얼굴을 뵙게 되니 늙으신 어머니 곁에 갈 수 없는 내 처지가 더 안타깝다.

나하고는 벌써 전에 1백세까지 사시기로 내가 억지 부려 강요를 했지만 인간 수명이 어디 아들과 어머니가 약속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나는 어머니가 살아 계시지 않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1백세가 다 무어냐. 125세까지 살으셔서 주름투성이 얼굴을 보여주시면 나는 무한히 행복하겠다.

하여튼 어머니는 워낙 부지런한 분이라 그 연세에도 매일 식사를 손수 해서 드신다. 아들한테도 전기밥솥에 이틀치 사흘치 해놓고 맛없는 밥을 먹지 말고 날마다 새로 해서 먹으라 당부한다. 그래야 먹는 것이 살로 간다고. 다 해도 나는 그것만은 못한다. 부엌일이라는 것이 성가시고 복잡하고 귀찮다. 어머니는 평생 그 일을 하신다.

어머니는 건강하신 편이지만 그래도 연세가 많으신 분이라 내일 일을 모른다. 내가 밤에 휴대폰을 끄지 않고 자는 이유가 그래서다. 전화를 끄고 잠자는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안단 말인가. 어머니께 전화를 할 때는 통화 시간대를 골라야 한다. 매일 낮잠을 주무시기 때문이다. 대강 오후 두세 시쯤 주무셔서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즐기시는 것 같다.

이때 전화를 걸면 어머니의 달콤한 낮잠을 내가 훼방 놓게 된다. 안될 말이다. 이건 큰 불효다. 모르긴 해도 어머니께 장수 비결이 있다면 틀림없이 낮잠이 아닌가 한다. 어머니의 아들인 나는 도통 낮잠을 자지 못한다. 자려고 애써도 안된다. 낮잠도 이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가싶다.

내가 날마다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짤막한 시간은 내 머리에서 엔돌핀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다. 뭐라고 할까, 그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대화를 하는 시간은 마치 하늘로부터 축복을 받는 느낌이다.

어머니는 얼마 전 코로나 백신을 2차까지 맞으셨다. 내가 후유증 걱정을 하니까 아무렇지도 않다며 되레 날더러 접종을 권하신다. 나는 기저병이 있어 접종 타임을 미룰 생각이다. 어머니와 아들의 전화 통화는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전화 같지만 되레 내 고단한 삶에 위로를 구하는 힐링 시간이다. 어머니께 전화를 하고 나면 나는 동심으로 돌아가 세상고락을 다 잊고 평안한 마음이 된다. 그러니 어머니는 이 아들을 위해서도 오래 사셔야 한다.

어느 날 안부 전화 끝에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하셨다. “네가 이 어미한테 너무 의존하는 것 같어야.” 이 무슨 말씀인가. 나는 순간 엔돌핀이 멈추고 머리가 멍해졌다. “나를 조금 멀리해야 쓰겄다. 잉” 덧붙인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순간 얼음 상태가 되었다.

어머니의 냉정한 말씀. 아무리 아들이래도 내가 너무 어머니께 매달려 있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짐작컨대 어머니는 내일이든 모레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항상 하고 계시는 듯하다. 벌써 전에 아버지 산소 곁에 가묘도 써 놓았다.

이 아들하고 미리부터 멀어지려는 마음. 마치 억지로 아기에게 젖을 떼려는 엄마같다. 나는 그날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무척 슬펐다. 어머니의 냉정함에 슬픈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하늘이 불러갈 피치 못할 운명에 대한 깊은 슬픔이다. 세상이 슬픈 실가닥으로 짜여진 광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면 아들이 크게 상심할까봐 미리 거리두기를 하시려는 것이다. 그 깊은 사랑의 마음을 내 모를 바가 아니다. 그래서 더, 더, 슬프다. 나는 코로나 거리두기는 잘 하고 있지만 어머니와의 거리두기는 암만해도 못하겠으니 이를 어쩌면 좋으랴. 어머니는 날더러 강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라는 당부를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영양제 보냈으니 드세요.” “하루 한번은 꼭 산책 나가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어머니와 나의 이 세상 인연을 생각한다. 하늘과 땅이 지켜준 부모자식 간의 인연도 다하는 날이 오리니. 사람은 슬프려고 태어났다는 말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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