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7)-방조처사은거(訪曺處士隱居)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7)-방조처사은거(訪曺處士隱居)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6.07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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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길 울리는 지팡이 소리 자던 새만 듣는구나 : 訪曺處士隱居 / 사암 박순

아는 친지 집을 찾으면 대좌를 하고 앉으면 술이 제격이다. 은근하게 술에 취해오면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이 줄줄 나오면서 대화가 무르익는다. 주흥이 무르익다 보면 한 가락도 나왔을 법하고, 삼경을 울리기가 바쁘게 어두운 오솔길을 줄달음질 하듯이 내려온다. 조처사란 친구가 은거했던 곳은 바로 그런 곳이었음을 알게 한다. 산에 있는 집에서 먹었던 술을 깨니, 흰 구름이 한가히 떠가고 달빛은 은은하기만 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訪曺處士隱居(방조처사은거) / 사암 박순

산에 있는 집에서 술에서 깨어보니

흰 구름이 한가히 달빛은 은은한데

대 숲을 빠져나오니 새소리가 들리네.

醉睡山家覺後疑 白雲平壑月沈沈

취수산가각후의 백운평학월침침

翛然獨出脩竹外 石逕笻音宿鳥知

소연독출수죽외 석경공음숙조지

돌길 울리는 지팡이 소리 자던 새만 듣는구나(訪曺處士隱居)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사암(思菴) 박순(朴淳:1523~1589)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산에 있는 집에서 먹었던 술을 깨니 / 흰 구름이 한가히 떠가고 달빛은 은은하기만 하구나 // 황급히 홀로 대숲을 빠져 나오고 보니 / 돌길 서걱서걱 울리는 지팡이 소리 자던 새만 듣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조처사가 은거하는 곳을 방문하며]로 번역된다. 아는 친지를 찾아가 정담을 나누는 일은 흔히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정분을 나누면서 대좌했다. 시문을 통해 정을 나누는가 하면, 원운과 차운을 통해 시상을 겨루기도 했다. 정담이 무르익어 갈 무렵에 술 단지를 든 마님의 발길이 이어진 다음엔 주흥이 무르익어 대좌의 분위기는 절정에 도달한다. 시인은 어제도 주흥이 익어가는 대좌의 만남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 처사가 은거하는 거소를 찾아가 산에 있는 집에서 술을 깨고 보니, 흰 구름이 한가히 떠가고 달빛은 은은하다는 선경先景의 시상을 이끌어냈다. 술은 취흥을 더하지만 더 많은 시상과 더 많은 상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었을 것이다. 김처사를 만나고 난 화자는 여러 감회가 새로웠을 지도 모른다. 대좌의 만남이 다 되고난 후 화자는 황급히 홀로 대숲을 빠져 나와 자연의 시상을 그려보았더니 돌길을 울리는 지팡이 소리에 자던 새들만 들었다는 사상을 만들어 냈다. 지팡이가 돌길을 울리는 그 소리에 자던 새들도 울렸다는 시상은 비유법을 쓰는 상상이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먹었던 술을 깨니 달빛도 은은하네, 대숲을 빠져나오니 지팡이 소리 새들만 듣고’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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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사암(思菴) 박순(朴淳:1523~1589)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은산군사(殷山郡事)등으로 썼다. 소(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지흥, 아버지는 박우이며, 어머니는 당악 김씨로 알려진다. 154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3년(명종 8) 정시 문과에 장원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醉睡: 취해서 졸다. 山家: 산집. 覺後疑: 술을 깨고 보다. 白雲: 흰 구름. 平壑: 골짝을 떠가다. 골짝을 고르게 하다. 月沈沈: 달빛이 은은하다. // 翛然: 황급히. 獨出: 홀로 나와. 脩竹外: 마른 대나무 밖을 나오다. 石逕: 돌길. 笻音: 지팡이 소리. 宿鳥知: 자던 새가 안다. 잠잔 새가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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