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3) - 이경산토월(二更山吐月)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23) - 이경산토월(二更山吐月)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5.10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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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千秋)에 동서로만 계속해서 왕복하는구나 : 二更山吐月 / 기봉 백광홍

사람의 생각이 다 다르듯이 사물을 보고 느낌도 다르다. 동산에 떠오르는 달을 보고 달이 산이란 아들을 낳았다고 할 수도 있고, 대변을 누었다고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물과 바다를 비추면 설사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생각의 차이다. 이경(9시~11시 사이) 무렵에 산이 달을 토해냈다는 시상은 대단히 좋은 착상인 것 같다. 이경(二更)에 동산에 두웅실 떠오르며 달을 토하더니 / 두웅실 떠올라와 석문봉(石門峯)에 걸려 있구나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二更山吐月(이경산토월) / 기봉 백광홍

이경의 동산에서 달을 토해 내더니

떠올라와 석문봉에 걸리어 있구나

거울도 수은 아닌 것 가을 하늘 왕복하네.

二更山吐月 來掛石門峯

이경산토월 내괘석문봉

非鏡亦非汞 千秋西復東

비경역비홍 천추서복동

천추(千秋)에 동서로만 계속해서 왕복하는구나(二更山吐月)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기봉(岐峰) 백광홍(白光弘:1522~1556)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이경(二更)에 동산에 두웅실 떠오르며 달을 토하더니 / 두웅실 떠올라와 석문봉(石門峯)에 걸려 있구나 // 거울도 아니고 또한 수은도 아닌 것이 / 천추(千秋)에 동서로만 계속해서 왕복하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초저녁에 산이 달을 토하더니]로 번역된다. 이경은 대개 밤 9시에서 11시 사이를 이른 초저녁이다. 상현달은 초저녁에 떠서 새벽에 뉘엿뉘엿 서산으로 진다. 석문봉은 충남의 가야산의 봉우리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커다란 돌무더기를 하늘 떠오르는 달과 해가 문으로 삼아 드나드는 문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시인의 시상도 어찌 보면 서사대사의 동향로봉登香爐峯의 시상과 유사한 면이 같다 하겠다. 시인은 선경후정에 관계없이 비유법의 한 묶음을 모았다고 할 수 있어 시상의 모범을 보인 작품임을 알겠다. 이경二更쯤에 동산은 달을 토해 내더니만, 토해난 달이 비로소 떠올라와 석문봉石門峯에 걸려 있다는 시상을 해냈다. 동산이 달을 토해냈다는 생각이나 석문봉에 걸렸다는 생각들은 시제가 보여준 객관적상관물을 자연에 빗대는 시상을 일으키고 있어 보인다. 화자가 펼쳐낸 시상은 후정의 한 줌 덩치로 정리하고 있어 비유법의 정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거울도 아닌 것이 수은도 아닌 것이, 천추千秋에 변함없이 동서로만 왕복한다는 시상이다. 달을 또 달리 비유한 것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동산이 달을 토하니 석문봉에 걸렸구나, 거울과 수은 아닌데 동서로만 왕복하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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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기봉(岐峯) 백광홍(白光弘:1522∼1556)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인이다. 1549년(명종 4) 28세로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을과로도 급제했다. 홍문관정자로 임명되고, 1553년(명종 8) 시부회에서 장원하여 선시십권을 상으로 받고 호당에 뽑혔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二更: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눈 두 번째(저녁 9시부터 11시 사이). 山吐月: 산이 달을 토하다. 來掛: 와서 걸리다. 돌아와서 ~에 걸리어 있다. 石門峯: 석문봉. 돌로 된 산봉우리. // 非鏡: 거울이 아니다. 亦: 또한(순접). 非汞: 수은도 아니다. 千秋: 천추. 오랜 시간. 西復東: 동서로만 왕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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