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의 ‘인생코치 전화통화권’
윤여정의 ‘인생코치 전화통화권’
  • 시민의소리
  • 승인 2021.04.29 03: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자 매스컴이 난리다. 수상 소감이 근사했다는 둥 별의별 가십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정작 영예로운 상을 수상한 윤여정은 아카데미 수상이 인생의 최고가 아니라고 한다. 그녀의 평정심이 내게는 오히려 한 인간으로서 크게 돋보인다.

나는 영화관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 ‘미나리’를 보지 못했지만 ‘대사를 외우지 못해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영화를 그만 둘 것’이라는 담담한 그녀의 삶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모습은 인생 역정을 헤쳐 온 늠름한 아우라를 보여준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자기 확신과 흔들림 없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녀가 세인의 관심을 끈 이번 수상에서 받은 것은 반짝이는 무거운 트로피가 다다. 상금은 0원이다. 아니 스웨그 백(Oscar Swagbag)이라는 것을 덤으로 준다고 하는데 오스카상과는 무관한 한 마케팅회사에서 안겨준 선물 가방이라고 한다.

그 가방의 가치가 2억원대를 웃돈다는데 그 가방에는 이런저런 특이한 것들이 담겨 있다. 럭셔리 크루즈 여행권, 소변 검사권, 순금 펜, 무료지방 흡입 시술권, 현관문 제작 이용권, 다이아몬드 목걸이, 인생코치 전화통화권 등등 잡다한 선물들이다.

그 중에 내 눈길을 끈 것은 ‘인생코치 전화통화권’이라는 것이다. 인생 코치 전화 통화권? 궁금하면 못 참는 나는 미국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게 대체 무엇인지를 알아보았다. 비슷한 서비스들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을 보니 미국에는 전화로 인생 상담을 하는 것이 하나의 직업군으로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한 마디로 말해 이름 있는 사람들이 전화로 인생 상담을 해주고 돈을 받는 사업이다. 이걸 정리하면 사람들이 괴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당할 때 누군가와 상담을 하며 간난을 헤쳐 가도록 돕는 일이다. 즉 야구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도루해라, 볼을 던져라, 감독의 코치를 받듯이 인생살이에 코치를 받는 것이다.

코치 형태는 직접 만나 얼굴을 보고 하는 상담보다는 비대면 전화 상담이 훨씬 낫다고 쓰여 있다. 말인즉 전화 상담은 상대의 사교적 호의에 대처할 필요가 없어 옷차림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거리 이동을 할 필요도 없으며 솔직하게 대답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대개 사람들에게 키, 몸무게, 옷, 냄새, 매너, 그리고 다른 신체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거나 열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는 전화 상담이 좋다는 둥. 지루하지만 조금 더 말하면, 전화 라이프코칭을 통해 코치의 편견이나 부담 없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며, 전화 인생코칭 질문을 통해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달콤하게 적시해 놓았다.

이 정도 설명으로 인생코치 전화통화권이 무엇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윤여정이 받은 전화통화권은 이런 상담을 무료로 받는 일종의 상품권이다. 과연 배우 윤여정에게 이런 인생상담 통화권이 필요할까. 나는 오히려 윤여정이 인생코치 역할을 하면 했지 무료로 누구에게 인생 상담을 받을 입장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녀가 여러 차례의 수상 소감에서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인생 역정에서 깨우친 지혜와 위트가 묻어나서다. 몇 대목을 옮겨보면 윤여정은 이후의 계획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오스카상을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건 아니잖아요”라며 “남한테 민폐 끼치는 건 싫으니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참 좋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는 “최고의 순간인 건 모르겠다”, “최고가 아닌 최중(最中)이 돼 같이 살면 안되냐”, “너무 일등, 최고 그런 거 하는데 최고란 말이 참 싫다” 그러면서 “아카데미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까지도 했다.

이런 몇 마디 말만 들어봐도 오히려 윤여정이 훌륭한 인생코치 같다. 한국에서도 인생코치 전화통화권이 선물로 인기를 끌 날이 곧 오지 않을까싶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