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미국인들이 더 큰 호응, “때론 능청맞더라”
윤여정, 미국인들이 더 큰 호응, “때론 능청맞더라”
  • 박슬비 기자
  • 승인 2021.04.27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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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의미와 연기 인생
55년차 배우 “다른 배우보다 운이 좋았을 뿐”
아시아인 두 번째 받아…역대 세 번째 고령 수상
​​​​​​​김기영 감독 ‘화녀’로 데뷔…개성 있고 다채로운 연기

배우 윤여정(74)이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씨가 수상소감을 얘기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게티이미지코리아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씨가 수상소감을 얘기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게티이미지코리아

윤여정은 26일 오전(현지시간 25일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유니온스테이션과 돌비극장 등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였다.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배우로는 ‘사요나라’(1957) 우메키 미요시에 이은 두 번째다.

윤 씨는 이번 영화를 통해 30여 개가 넘는 해외 연기상을 휩쓸었고, 미국 배우 조합상(SAG)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 여우조연상을 석권하며 오스카 유력 후보로 지목되면서 이변을 일으켰다.

윤여정은 스스로를 ‘생계형 배우’라고 칭해 왔지만 이제 명실상부한 오스카의 여왕이 됐다. 그는 “운이 좀 더 좋았을 뿐”이라고 겸손한 수상 소감을 밝히며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 트로피를 손에 쥐고 활짝 웃었다.

1966년 데뷔해 90여 편의 드라마, 33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배우로 자리매김한 윤여정은 이제 세계무대의 중심에 섰다.

영어 대화가 가능한 윤씨는 각종 시상식에서 재치있는 수상 소감을 말하며 현지인들의 호감도를 높여왔다. <미나리> 속에서는 전통적인 ‘한국 할머니’를 연기했지만, 현실에선 미국 내 아시아인 혐오범죄를 지적하는 등 동시대 이슈를 놓치지 않았다.

이날도 윤씨는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시상식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함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글렌 클로스를 이길 수 있겠냐”며 “다른 배우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영화 ‘미나리’는 미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한국인들은 이미 윤여정의 연기를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어 ‘미나리’에서의 연기가 새롭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윤여정의 연기를 처음 접한 아카데미 회원들 눈에는 매우 솔직하고 능숙하며 때로는 능청맞은 것으로 비치는 듯하다.

스웨덴 출신 HFPA 회원인 마그너스 선드홀름은 “윤여정은 다소 무거운 이야기에 코믹한 쉼표를 줘 영화의 균형을 맞춰주고 있다”면서 “어려운 역을 쉽고 우아하게 소화해낸 훌륭한 배우”라고 했다. 

특히 그의 수상은 요즘 미국에서 아시안에 대한 증오 범죄가 횡행한 가운데 무척이나 값진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러시아 출신 세르게이 라클린도 “그가 미국 영화에서 한국어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것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서로 더 가깝게 만들어주고 또 이 세상을 더 작게 만드는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윤씨는 연기경력 55년의 배우지만, 영화 출연은 상대적으로 과작이었다. 데뷔작은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였다. 단란한 중산층 가정을 파괴하는 하녀 역할이었다.
20대 초반 신인 배우였던 윤씨는 한국 영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거장과 함께 영화를 시작한 것이다.
윤씨는 이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에서도 고 김기영 감독에게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결혼과 함께 도미한 윤씨는 귀국 후 박철수 감독의 <어미>(1985)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딸이 인신매매단에 납치됐다가 돌아온 뒤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자, 범인에게 갖가지 잔혹한 수단으로 직접 복수하는 어머니 역을 맡았다. 

1980~1990년대 주로 TV 드라마에 출연했던 그는 2000년대 들어 다시 영화 출연을 병행했다. 2003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은 ‘영화배우 윤여정’의 입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 작품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알코올중독에 빠져있던 남편이 죽자마자 사귀던 남자친구와 재혼을 선언한다.

윤씨는 <하하하>(2010), <다른 나라에서>(2011),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등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도 다수 출연했다.

윤씨의 연기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2016)다.
그는 이 영화에서 탑골공원의 ‘박카스 아줌마’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는 햄버거 가게 직원이 “계산 도와드리겠다”고 말하자, 윤씨가 “돈 내줄 것도 아닌데, 도와주긴 뭘 도와주냐”고 혼잣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재용 감독은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윤여정씨의 실제 말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종화 팀장은 “윤여정씨는 안일한 캐릭터 해석에 머물지 않고 늘 새롭게 도전한다”며 “신뢰 가는 감독이 그동안 없었던 이야기를 한다면 이런저런 조건을 재지 않고 출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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